감정과 관념 그리고 언어
선악미추 빈부귀천이 말이거나 이름일 뿐이고 실체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한테나 선악미추와 빈부귀천에 대한 감정과 관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에는 없던 말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인간들의 감정과 관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지금과 같이 광범위한 지역에서도 모두에게 소통될 수 있는 언어가 생긴 것이다.
즉 선악미추 빈부귀천라는 감정이나 관념이 먼저 생겨났으며 나중에 어렵사리, 그러한 감정이나 관념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생긴 것이지, 언어 때문에 그런 감정이나 관념이 생겼다는 소위 깨달았다는 분들의 주장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다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과 관념을 표현하고자 만든 언어 때문에, 오히려 감정이나 관념이 안 좋은 쪽으로 더욱 고착되는 역효과가 발생되므로, 이러한 부작용을 없애려고 애쓰다가 나온 잘못된 발언임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는지 모른다. 정작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감정이나 관념은 비록 언어로는 두 가지로 딱 구분되나, 개개인마다의 감정과 관념은 모두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선악. 미추. 빈부. 귀천, 이렇게 언어로만 보면 정확하게 반으로 구분되는 것 같으나, 실상은 그런 명확한 구분은 어디에도 그리고 누구에게도 있을 수 없다. 저마다 자신의 관념을 돌아볼 때, 선악. 미추. 빈부. 귀천의 기준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즉 성장하면서 또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달라진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실이란 없다는 게 진실임을 우리 모두 깨우쳐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또는, 자신이 속한 종교집단이나 사회집단의 경전이나 주장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희생되었는가?
우리는 77억 인구 각자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감정과 관념이 모두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타인의 감정과 관념을 나에게로 통합시키고자 공연히 애쓰는 우리 인간들의 잘못을, 언어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소위 깨달은 자들의 어리석음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한다면, 선악. 미추. 빈부. 귀천 등등에 대한 감정과 관념은 모든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게 아니라, 나 혼자만 그러한 감정과 관념을 갖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판단한다는 진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보다 겸손해지고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이 찾아올 것이다.
또한 보다 당당해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느끼고 생각한다며 타인에게 보다 당당하게 밝히게 될 것이다. 감정과 관념에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기준이라는 게 없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닫는다면 말이다.
선악미추 빈부귀천이 말이거나 이름일 뿐이고 실체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한테나 선악미추와 빈부귀천에 대한 감정과 관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에는 없던 말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인간들의 감정과 관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지금과 같이 광범위한 지역에서도 모두에게 소통될 수 있는 언어가 생긴 것이다.
즉 선악미추 빈부귀천라는 감정이나 관념이 먼저 생겨났으며 나중에 어렵사리, 그러한 감정이나 관념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생긴 것이지, 언어 때문에 그런 감정이나 관념이 생겼다는 소위 깨달았다는 분들의 주장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다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과 관념을 표현하고자 만든 언어 때문에, 오히려 감정이나 관념이 안 좋은 쪽으로 더욱 고착되는 역효과가 발생되므로, 이러한 부작용을 없애려고 애쓰다가 나온 잘못된 발언임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는지 모른다. 정작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감정이나 관념은 비록 언어로는 두 가지로 딱 구분되나, 개개인마다의 감정과 관념은 모두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선악. 미추. 빈부. 귀천, 이렇게 언어로만 보면 정확하게 반으로 구분되는 것 같으나, 실상은 그런 명확한 구분은 어디에도 그리고 누구에게도 있을 수 없다. 저마다 자신의 관념을 돌아볼 때, 선악. 미추. 빈부. 귀천의 기준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즉 성장하면서 또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달라진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실이란 없다는 게 진실임을 우리 모두 깨우쳐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또는, 자신이 속한 종교집단이나 사회집단의 경전이나 주장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희생되었는가?
우리는 77억 인구 각자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감정과 관념이 모두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타인의 감정과 관념을 나에게로 통합시키고자 공연히 애쓰는 우리 인간들의 잘못을, 언어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소위 깨달은 자들의 어리석음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한다면, 선악. 미추. 빈부. 귀천 등등에 대한 감정과 관념은 모든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게 아니라, 나 혼자만 그러한 감정과 관념을 갖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판단한다는 진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보다 겸손해지고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이 찾아올 것이다.
또한 보다 당당해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느끼고 생각한다며 타인에게 보다 당당하게 밝히게 될 것이다. 감정과 관념에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기준이라는 게 없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닫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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