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살아있는 것 / 신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할지라도*
내 고통과 눈물과 우울
나는 다른 무엇과 바꾸지 않으리라
끝없이 멀리하고 싶던 세월 지나
지금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그들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고
오늘이 오늘이어서 좋다
한때는 그들을 피해
깨지 않는 잠 빠져들고 싶었지만
죽을 용기조차 없었던 내가
이제는 더없이 고맙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우울한 기분에 시달리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덤프트럭 앞으로
뛰어들고자 했던 순간
차에 치여 죽으면
나와 남은 가족은 괜찮겠지만
운전기사는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
문득 떠올라 고통에 무감각했던
단 한 번의 시간이 지나갔다
절벽에서 용기 있게 뛰어내리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고 날게 된다는
서양에서 전해지는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
비유가 아닌 사실로 알아듣고는
상상 속에서 연습하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파우스트처럼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던 때 있었다
깨달음이란 신비한 능력을 얻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나를 자각하는 것이라는
유튜브 법문을 열흘 정도 듣다가 문득
내 뒷모습이 보인 적 있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외부 세계가 내 몸 바깥이 아니라
내 몸뚱이도 포함된다는 사실 깨닫고는
나는 어디에도 머물 곳이 없었다
텅 빈 침묵의 세계
무시공無時空에 내가 있음이 느껴졌다
지금 여기란 시간도 공간도 없음이다
보이는 내 몸은
우주에서 먼지보다 작지만
보이지 않는 나는
우주 전체를 감싸고 있다
내 몸은 언젠가 사라질지라도
보이지 않는 나는 영원하며
지금 여기 살아있음이다
* 이성복 시인,「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에세이 구절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