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빨래

신타나초 2021. 11. 24. 15:27

빨래


세탁기에서 다 된 빨래를 꺼내다 보면, 검은색과 흰색 옷을 구분해서 넣어야 함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흰옷에 검은색 얼룩이 묻기도 하고 색깔 짙은 옷에 흰색 보풀이 달라붙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얘기만이 아니라, '백로 모인 곳에 까마귀야 가지 마라'라는 말도 같이 해야 할 것이다. 백로만 검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까마귀도 하얘지는 걸 싫어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시간 동안 빨래를 해왔으며 세탁기를 쓴 지도 제법 세월이 지났을 텐데, 우리는 여전히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소리만 고장 난 녹음기처럼 외우고 있다. 흰색에서 볼 때는 검은 색이 저쪽이지만, 검은색에서 볼 때는 흰색이 저쪽이다. 흰색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검은색이 되는 것이니, 검은색을 향해 저것은 내가 아니라고 소리치지 말자.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정에서 반을 거쳐 합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 아니겠는가. 검은색도 흰색도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색깔인 것처럼,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라든지 또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란 없다. 모든 게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를 귀찮게 하는 모기와 파리조차도, 우리가 아직 그들 존재의 필요성을 모른다고 해서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신의 큰 뜻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신의 뜻을 내세워 누군가를 증오하고 저주하는 것이야말로 신을 가장 욕되게 하는 짓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신을 믿는 종교인들에 의해 과거에도 저질러졌으며, 지금도 저질러지고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인종 청소라든지 인간말종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워버리자. 누구 하나 신의 사랑하는 자녀 아닌 사람이 없다.

99마리 양을 놔두고 길 잃은 1마리 양을 찾아 나선다는 비유가 기독교 바이블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미워하지 말자. 증오하거나 저주하지 말자. 그러한 악감정이란 결국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창이 될 것이다. 흰색도 검은색도 모두가 적이 아닌 친구일 뿐이다. 햇볕과 바람에 말려 입어야 할 소중한 옷일 따름이다.

'단상 또는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식 그리고 나  (0) 2021.11.30
수용과 선택  (0) 2021.11.30
마지막 잎새  (0) 2021.11.24
육갑 六甲  (0) 2021.10.02
부처와 그리스도  (0) 2021.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