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의식 그리고 나

신타나몽해 2021. 11. 30. 23:47


의식 그리고 나


내가 아닌 것들은 다들 왔다가 떠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옷이나 집 등 물건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몸조차도 내게 왔다가 언젠가는 떠난다. 최후엔 내 몸이 의식에서 분리가 된다. 의식은 그대로지만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몸과 의식이 분리되는 죽음의 순간, 몸에 있는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의식도 빠져나간다고 믿는다. 즉 몸의 죽음과 함께 의식도 생명의 기운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무지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몸과 함께 하는 의식이 바로 생명인데 어떻게 생명을 잃을 수 있겠는가? 몸에서 호흡과 심장 박동이 멈추더라도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살아있다. 의식이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음이다.

심장 박동이 멈추는 순간 우리 의식은 몸에서 떠올라, 자신의 몸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몸 주위에서 몸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 친지들을 바라볼 뿐이다. 이러한 '의식'을 우리는 '마음' 또는 '영혼'이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하기도 하나, 나는 의식이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

'마음'은 의미하는 바가 너무 광범위해서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으며, '영혼'은 자칫 죽은 뒤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의식'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삶과 죽음의 세계 모두에 존재한다는 주장에 별다른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모두 내게 왔다가 때가 되면 떠나지만, 의식은 언제나 나와 함께하기 때문에 그게 바로 나인 것이다. 의식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곧 의식이다. 그리고 우리 몸 안에 의식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의식 안에 몸이 있음이다. 의식이란 게 몸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몸과 함께 하는 것일 뿐이다.

사실 의식이란 형상이 없으며 따라서 당연히 크기도 무게도 없다. 의식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좌표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무시공의 세계이며 텅 빈 빛이거나 텅 빈 침묵이라고 표현할 수 있음이다. 의식이란 모든 것의 바탕이며 비유하자면, 영화관에서 영상을 드러나게 하는 스크린과 같다.

영화에서는 전쟁과 평화, 폭력과 사랑 등이 펼쳐지고 파괴와 건설이 반복되지만, 스크린은 영화에서와는 달리 무엇 하나 파괴되지도 않고 주인공이 죽지도 않는다. 이러한 스크린을 '참나 (진아)'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나'라는 표현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게 내 곁에 다가왔다가 떠나지만, 최후까지 내 몸에 남아있는 것. 그게 바로 의식이며 따라서 의식이 곧 나인 것이다. 그리고 몸에서 의식이 떠나면 몸은 비록 죽는다 해도, 의식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가 깊은 잠에 빠져있다 해도, 의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죽음이란 몸의 영원한 잠일 뿐이다. 또한 몸이란 영원한 잠에 빠져들면 하나의 허상이나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더는 실존하지 않는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상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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