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내면세계에 대한 패러다임

신타나몽해 2022. 1. 9. 01:36
내면세계에 대한 패러다임


잠자면서 꿈을 꿀 때는 자신이 꿈속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잠을 깨고 보면 오히려 꿈속 세계가 자신에게 일어난 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깨어남 또는 깨달음이 바로 이와 같다. 평소 일상을 살아갈 때는 자신이 세상의 한 부분으로 느껴지지만, 깨닫고 나면 오히려 세상이 자신의 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이처럼 인식의 전환 또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바로 깨달음이다.

깨달음을 깨어남이나 깨우침 등 다른 말로 표현해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용어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 즉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한마디로 깨달음이란 자신이 이 세상에서 부분으로서 즉 개체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저마다 자신이 전체이자 전부임을 확연히 느끼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몸이 곧 자신이 아님을 확연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란 사라지거나 또는 사라져야 할 대상이 아니다. 마음의 실체란 오히려 우리가 깨달아야 할 대상이다. 마음의 실체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색수상행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닫는다고 해서 마음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깨닫게 되면 오히려 마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마음을 자신의 내면세계로 품어 안을 수 있다.

또한 나라는 것도 마음과 마찬가지로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상계 안에 있는 허상의 나 즉 관념 속의 나로부터 벗어나, 내가 오히려 현상계 안의 나를 비롯한 모든 허상을 내면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한마디로, 몸이라는 유형의 존재 안에 자신의 내면이 담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몸을 비롯한 유형-무형의 우주 전체가 오히려 내면에 담기는 것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내면세계에 대한 패러다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대상이 물리적 우주가 아닌 내면세계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3차원의 공간 안에 있는 내면세계를 생각하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3차원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내면세계에서 과감히 벗어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3차원의 시공간은 지금 이대로 존재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3차원의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무시공의 세계에 존재함을 체감하는 것이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듯, 내면세계에 대한 패러다임이 180도 확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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