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욕망

신타나몽해 2022. 1. 9. 13:57

욕망


스스로 내가 원하는 걸까? 아니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나도 같이 원하는 걸까? 나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예전에는 후자였으나 지금은 전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스스로 원하는 것은 대부분 이루어지지만, 타인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할 때는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나는 깨닫는다. 욕망의 대부분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질 때, 또한 우리는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걸까? 스스로 내가 원한다는 말! 뭔가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며 주체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종속적인 배움을 통해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주체가 될 수 있음이다. 종속을 거치지 않은 자주란 있을 수 없다.

다만 계속하여 종속적일 수 있으며, 비교적 빨리 자주적일 수 있음이다. 둘 중에서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종속에서 벗어나 자주와 독립으로 가는 게 자연의 법칙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하나다. 타인이 원하는 것을 흉내 내고 따라 할 게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욕망으로 체화시키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스스로 자신의 욕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적응이기도 하고 세뇌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적응이냐 또는 세뇌냐는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욕망을 이루는 방법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게 하나 있다.

우리는 욕망 자체가 아니라, 다른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욕망을 선택하곤 한다.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 내지 도구를 얻기 위해, 재력이나 권력을 원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재력인 돈이나 권력인 사회적 지위 등은, 자신이 도구나 수단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재력이나 권력을 얻기도 힘들지만, 설사 얻었다 해도 비뚤어진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더러 있음이다. 따라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가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란 무엇일까? 바로 우리 자신이 원하는 길로 용기 있게 걸어가는 것이다.

'내가 돈이 많으면 이렇게 살 것이다'가 아니라,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만큼의 돈에서 당장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이러한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있으면 이렇게 살 것이다'가 아니라, 지금 자신의 초라한 상태에서 당장 시작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나중이 아니라 지금인 것이다.

지금 당장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게 바로 자연의 법칙을 따라 사는 것이며, 돈이나 사회적 지위 등이 원하는 길이기도 하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 때, 우주가 나서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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