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것들
작게 구겨진 껌종이 버릴 곳 찾다가 눈에 띈
'나는 오래전부터 여기에 늘 있어요.'라고 말하는 휴지통
혹 내가 오기도 전에 이미 지나가버리지는 않았나 하고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을 때
저만치서 다가오는, 일터에 시간 맞춰 출근하기 위하여 타게 되는 버스
추워진 가을 아침, 출근한 일터에 이미 따뜻하게 켜져 있는 난롯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가 슬며시 찾아드는 배고픔에 고개 들었을 때 보게 된
벽시계에 걸린 점심시간
어렵사리 시간 내어 찾아간
몇 군데의 순례 끝에 마지막 서점에서 발견한 내가 사고자 하는 책들,
키우던 개를 잃어버려 열흘 넘게 찾다가
어느 고마운 분에 의해 맡겨진, 동물병원에 잘 있는 내 분신의 모습
안부가 궁금했던
걸려온 전화와 우편배달부가 전해준 편지,
우체통보다 인터넷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쁜 병에 담아 인터넷의 바다에 띄워 보내준 글들,
조금은 엉뚱하기도 한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무려 한 달이나 이른 11월에 온 크리스마스 카드
차 안에서 라디오를 켰을 때 우연히 들려오는 내 귀에 익숙한 노래와
길을 걷다가 레코드점에서 들리는, 발장단이 절로 맞춰지는 내가 아는 음악들
아는 사람을 찾아가는 초행길에 어쩌다 마주친 이정표,
차를 몰고 갈 때, 갈림길에서 먼저 가라는 가벼운 손짓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반가움을 가져다준다.
삶의 기쁨도 그 옆에서 서성거린다.
자란 김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