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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리고 저녁

가을 그리고 저녁 / 신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신경림 시인의 시 [파장 罷場]에 나오는 구절이다 시 쓰기 시작한 지 스무 해쯤 된 그동안 몇 번은 읽어보았을 시구 그러나 나는 잘난 놈이고 싶었다 밖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버티고자 애를 써왔다 적어도 생긴 얼굴은 그런대로 잘났다며 못생긴 모습은 눈에 띄는 것조차 꺼렸다 동네 복지관에서 저녁을 먹는데 유독 못생긴 사람이 눈에 띄는 게 싫어 시선을 피하는 나 자신을 자각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에 그의 얼굴 한참을 바라보다 신경림 시인의 시구가 다시금 떠올랐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제는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아닌 잘생긴 놈도 못생긴 놈도 아닌 가을이 물들어가는 나무처럼 어둠에 젖어 드는 저녁처럼 그 아래 흩어진 낙엽처럼

신작 詩 2022.10.26

0과 동그라미

0과 동그라미 / 신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모순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지만 스스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 몸이 0과 같은 존재임을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있으면서도 없는 것임을 모르는 오늘도 동그라미 같은 내가 그 안에 많은 것을 담고자 한다 아무것도 없는 동그라미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음을 모르는 채

詩-깨달음 2022.10.25

공사 중

공사 중 / 신타 요천 자전거길 지나 섬진강 자전거길 거쳐 남원에서 구례까지 100리길 나섰는데 요천대교에서 공사 중이다 조금 더 직진해서 좌회전하라는 안내판을 믿고 직진하는데 한참을 가도 뚝방길만 반듯하다 그나마 가다가 길이 끊기는 공사가 여기는 더 크다 동네로 우회하다 보니 곡성 가는 큰 다리가 나온다 자전거로 가다가는 모임 시간에 닿을 수 없어 하릴없이 기차표를 끊는다 곡성역에서 구례구역까지 기차에 자전거를 싣는 예전 기억을 믿었다가 다른 길로 바꾸어야 하는 삶이란 늘 새로운 선택이다

신작 詩 2022.10.23

실연

실연 / 신타 실에서 끊긴 연 사랑이 채 물들기도 전 이별이라는 말도 꺼내기 전 서로에게서 실과 연이 끊겨버렸다 하늘 저 멀리 나르는 연이 끊긴 연 땅에 떨어진 잎새도 가을날 끊어진 연이리라 연이 끊겼다 해도 죽음조차 마지막이 아니며 하물며 지상에서라면 우린 언젠가를 희망해야 한다 하늘을 떠돌지라도 마음 둘 곳 찾을지라도 지금이 아닌 다른 때일지라도 우린 언젠가 또다시 만나게 되리니

신작 詩 2022.10.20

진화와 창조

진화와 창조 / 신타 이 세상 모든 생물이 박테리아에서부터 진화되었다고? 어림없는 소리! 창조에서 시작되어 진화로 이어지다가 다시 창조가 시작되는 걸 눈으로 보면서도 이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자전거는 자전거에서 끝나고 자동차는 자동차에서 끝나며 기차와 우주선은 새로운 창조이지 않은가? 창조에서 진화로 이어지다가 새로운 창조로부터 다시 진화가 시작된다는 사실에 눈 감은 그대 이름은 과학자! 예수 그리스도는 일찍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면서도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신에게 빌고 빌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창조에서 시작되었지만 진화를 거쳐 다시 창조가 시작된다는 걸 눈으로 보면서도 모르는 어리석음 종교와 교주에 눈이 먼 그들을 팔아 먹고살고자 하는 그대 ..

신작 詩 2022.10.19

헤어짐의 미학

헤어짐의 미학 / 김신타 그대 삶에 평안함이 이어지길, 파도가 칠지라도 지나서 보면 우리에겐 늘 잔잔한 바다 그동안 고마웠어 너를 사랑해 파도였다가도 다시 바다일 수밖에 없는 운명 떨어졌을 때 잠시 만났지만 어차피 하나일 수밖에 없는 너와 나 지금은 둘이지만 언젠가 다시 하나가 될 터 그때 괜히 미안해하지 말고 지금 헤어짐조차 사랑하자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에 감사하자 너와 나 그리고 모두에게 깊이 고개 숙이자 만남이 없었다면 우리 헤어짐조차 아름답다고 독백하는 시간 고요히 가질 수나 있을까 바다가 있기에 파도가 있고 파도가 있기에 바다인 것처럼 우린 모두 하나이지만 둘로 보이는 때가 있을 뿐 다시 하나임이 느껴지는 날 언제일지라도 그때는 오리니 사랑과 아쉬움으로 그럼 그대여 안녕 "떠나갈 때 떠나간대도..

둘이 아니다

둘이 아니다 / 김신타스쳐 가는 풍경은 모두 아름답다먼 곳이든 가까운 곳의 풍경이든 우리는 모두 운이 좋은 사람이다그대가 지금 웃거나 울거나 간에세상은 둘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스스로 원하는 것만이 나타날 뿐빛과 어둠이 나뉘어 있지 않으며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음을 안다어둠을 멀리하고 저주하기보다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존재하라마치 거울처럼 모든 것을 비추되보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없는 빛

신작 詩 2022.10.13

언젠가는

언젠가는 / 김신타 마지막이란 더 이상 갈 길이 없거나 더 이상 함께 할 시간이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리라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으니 마지막인 것처럼 막말이 아닌 미련을 담아 작별 인사를 하자 죽음조차 마지막이 아닐진대 하물며 지상에서라면 우린 언젠가를 희망해야 한다 지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지금이 아닌 다른 때일지라도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지니 「구례문학 32호(2023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