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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오늘

믿음의 오늘 / 김신타 눈에 보여야 믿을 수 있었으나 이젠 알 수 없어도 믿을 수 있다 내가 모든 걸 안다면 믿을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미 걸어 본 오늘과 아직 지나지 않은 오늘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일도 또 다른 이름의 오늘이다 앞날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모든 게 보인다면 세상은 사막과 같을 뿐이다 알 수 없기에 오히려 고맙다 세상 모든 걸 안다면 나는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무서웠던 사후세계가 이제는 무조건의 사랑 가득한 곳으로 바뀌었는데 예전엔 알 수 없어 불안했던 미래 이제는 뻔한 미래가 되어버렸다 오랜 세월 부둥켜안아 왔던 마음속 두려움에서 벗어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들인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어차피 뻔한 미래가 아닌 알 수 없는 믿음의 오늘, 그 사랑을 향해 달려 나가리라 「구례문학 3..

파도치는 바다처럼

파도치는 바다처럼 / 신타 어떤 시는 기가 막히고 대부분의 시는 시들하다 내가 쓴 시도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누가 쓴 시인가 싶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그렇다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기는커녕 내 마음도 울리지 못하는 그냥 그런 시를 쓰면서 시상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오늘도 세상을 살아간다 고마움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살아있다는 게 말이다 글자로 써놓고 보니 갑자기 궁금해진다 살아있다는 게 무엇일까 스스로 존재함을 의식하는 것일까 아무튼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원망과 감사가 혼재하는 내 안에서 지금은 감사함 쪽을 선택하지만 어느 때 또 원망을 선택할지 모르는 그렇다 하더라도 또한 선과 악이 혼재하는 내 안에서 악을 멀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 모두를 기꺼이 수용하는 동시에 다만 선의 길을 택하고자 한..

신작 詩 2022.10.04

뱀사골에서

뱀사골에서 / 신타 물빛 파도치는 한여름 계곡이거나 눈부신 가을 단풍 아니어도 그대와 함께 걷는 길 어느새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은 아직 물들지 않은 그대와 손잡고 걸었던 길 모처럼 다시 걸어봅니다 맑은 날에 소낙비 쏟아지고 태풍 불어닥치던 날 있었지만 이제는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알밤을 주워 그대 손에 건네는 노을이 물드는 저녁 한때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나와 그대 모습 변해 갈지라도 계곡은 여전히 푸르게 빛납니다

신작 詩 2022.09.23

깨달은 사람이란

깨달은 사람이란 외면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는 게 아니라, 내면적으로 어린아이가 되기 시작한다. 내면이 변함에 따라 외면도 점차 따라서 변하겠지만, 우선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어쩌면 내면에서조차 어린아이가 되는 게 아니라, 성인의 인식과 아이의 인식이 병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장하면서 기억에서 지워버린 어린아이 때의 인식이 되살아나, 성인이 된 지금의 인식과 병렬로 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깨닫게 되면 때로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다만 어릴 때와는 달리 논리가 정연하다. 근대의 선승이라 일컫는 경허 선사의 기행 중에, 제사도 지내기 전에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을 거두어 배고픈 동네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도, 분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던 제주 즉 망..

깨달음의 서 2022.09.18

긍게 사램이제

긍게 사램이제 / 신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와 "긍게 사램이제"라는 구절에선 동감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말씀이 어느 경전 구절보다 성스러웠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와 "긍게 사램이제"라는 간격을 오늘도 나는 걷고 있다 지나가 버린 애증의 기억도 아직 오지 않은 상상도 아닌 나 자신과 그리고 타인을, 실수하고 배신하고 살인하는 우리를 이제부턴 더욱더 용서하고 사랑하리라 감각 속의 사람도 아니며 기억 속의 사람도 아닌 보이지 않는 알 수 없음 무형으로 존재하는 감각 자체와 기억 자체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는 바로 우리 자신이므로 ★ 겹따옴표는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

신작 詩 2022.09.17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인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인 / 신타 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이것이 내가 아니다 내 안에 있는, 나라고 여겨져 왔던 이것이 내가 아니다 우주에서 먼지보다 작은 나란 관념 속의 상에 지나지 않으며 오감의 세계를 살면서도 감각을 벗어난 텅 빈 절대가 있음을 그동안 감각 안에서만 살아왔음을 문득 깨닫는 깨달음이 있다 입으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외치면서도 오를 때 보지 못한 꽃 내려갈 때 보게 됨을 알지 못하는 정상에 올랐으면 다시 내려가야 함을 돈오에서 점오가 시작됨을 모르는 이가 많다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인 절대가 있음이다

詩-깨달음 2022.09.10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 / 신타 시가 없었다면 나는 사람을 만난 기쁨을 사람이 떠난 슬픔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 술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과 함께하던 기쁨을 사랑이 떠나버린 시간을 홀로 기억하기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내겐 내가 있어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는 시를 쓰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도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원고지 아닌 휴대폰을 들고 떠오르는 생각과 말을 담아 시를 쓰는 밤의 시간이 있다 지금 이대로 내 안에 머물리라 이미 소망이 이루어진 것처럼 원하는 걸 이미 이룬 사람처럼 꿈을 꾸고 새 아침을 맞이하리라

신작 詩 2022.09.09

사과의 윤회 輪廻

사과의 윤회 輪廻 / 신타 식탁 위에 놓인 생명 나무에서 떨어졌지만 살아 있다 내가 내 몸을 보고 느끼며 또 생각하듯이 사과 한 알 그도, 제 몸을 스스로 바라보고 느끼며 또 생각한다 사과가 썩는 것은 내 몸이 썩는 것, 파상풍이거나 암에 걸린 것이다 곧바로 죽는 게 아니므로 시름시름 앓다가 병이 씨앗까지 퍼졌을 때 사과 한 알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생명은 여전히 남아 또 다른 사과의 씨앗 속으로 들어간다 씨앗을 여물게 하고 과육을 살찌우게 하며 또다시 나무에서 떨어진다 식탁 위에 놓여 해체되거나 아니면 땅속에서 몸을 푼다 모천을 찾아 알을 낳는 연어처럼 모토 母土에서 새끼를 낳고는 스스로 어린 것의 거름이 된다 몸이 아닌 생명을 이어받은, 어린싹은 어느덧 나무가 되고 암수가 하나 되..

詩-깨달음 2022.09.06

징검다리

징검다리 / 신타 내려놓는 게 아니라 줄이는 것이라고 했던가 사랑도 집착도 욕심을 조금만 내도록 해볼 게 맘 찜찜하게 해서 미안해 살면서 미안하단 말 여태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지금도 안 하고 싶은데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아 눈물이 나와 태풍과 함께 쏟아진 비에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은 엊그제 함께 건너던 징검다리 소용돌이치는 냇물은 세상 살아가는 마음이겠지 흐려졌다가 맑아지고 흘러넘쳤다가 가라앉는 사랑하다가 미워하고 밉다가도 사랑스러워지는 건 냇물처럼 흘러가는 마음이겠지 불어난 물에 사라진 징검다리 여전히 넘쳐흐르는 냇물 가두거나 남길 것 하나 없어도 흘러가고 있음 거기에 아무것도 없는 내가 있겠지

신작 詩 2022.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