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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을 때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을 때 / 신타 빗물이 고인 위에 연달아 떨어지며 파문을 만들어내는 빗방울 창문 밖 당연했던 풍경이 당연하지 않을 때 귓가에 들려오는 빗소리 언제 어디서 처음 들렸을까가 문득 궁금해지는 능소화에 매달린 주황색은 어떻게 처음 생겼을까 하는 부질없음 속에서 피는 한 편의 시 가지 끝에 나란히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는 이파리들 예전부터 보아온 모습이지만 새삼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맑게 갠 한낮에도 태양이 도는 것처럼 보이는 감각의 오류 지식으로는 알아도 오류를 깨닫지 못한 채 감각을 하늘처럼 섬기는 여전히 낮은 자세 늘 함께하는 식탁 위에 놓인 풍경들 앞에 놓인 빨간 머그잔이 내 몸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질 때 비로소 몸에서 벗어나고 있음이다

신작 詩 2022.09.05

감각과 기억의 세계 그리고 깨달음

감각과 기억의 세계 그리고 깨달음 우리 인간에게는 인체의 오감에 의한 감각이 있으며, 그러한 감각에서 비롯된 감정과 생각 그리고 의지적 행동 등에 대한 기억 속에 우리는 매몰되어 있다. 매몰이라는 표현보다는 몰입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색수상행식 色受相行識의 수렁에 빠져있음이다. 더욱이 자신이 감각에서부터 감정과 생각, 행동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기억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채 살아간다. 깨달음이란 다름 아닌 감각에서 비롯된 감정·생각·행동과 이러한 색수상행에 대한 '인식된 기억'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레 몰입되는 감각적 세계와 감각 세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감정과 생각, 행동 그리고 인식과 기억이라는 세계에서..

깨달음의 서 2022.08.18

기다리는 동안에도

기다리는 동안에도 / 신타 믿고 기다려라 때는 오리니 바라 마지않는 그때가 오리니 기다리는 동안에도 삶은 충만하리라 믿음을 고집한다면 소망이 이루어지리라 우리가 가진 건 오직 믿음뿐이며 할 수 있는 건 다만 기다림뿐이다 무조건 사랑하리 마음으로 사랑하리 나보다 그가 클지라도 또는 작을지라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마음 깊이 사랑하리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미루는 어리석음 아닌

신작 詩 2022.08.17

찻물을 끓이며

찻물을 끓이며 / 김신타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싶어 찻물을 올려놓는다 평생 아침잠 많던 내가 새벽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런 호사를 누린다 도라지. 생강. 마늘이 차로 합체된 조그맣고 하얀 망사주머니 끓인 물을 붓는다 목과 기관지에 좋으리라는 기대를 마신다 따뜻함이 좋다 지금이라는 순간이 좋다 한때는 내가 산다는 게 살아 있음이 고통인 때 있었지만 지금은, 지금이어서 좋다 내가 살아 있음에 아침과 마주할 수 있음에 하고자 하는 일 행할 수 있음에 내가 나를 볼 수 있음에 내가 존재함에 [구례문학 제 29호(2020년) 발표]

보물찾기

보물찾기 태초에 생각, 말(말씀), 움직임이 있었다. 여기서 움직임이란, 무형 無形인 생각과 말이 고정된 게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뜻이다. 또한 생각을 '의식'으로, 그리고 말을 '소리'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상관없다. '태초에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 있었을 뿐 아니라, 무형의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있었으며, 역시 무형의 존재임에도 고정됨이 아닌 움직임이 있었다'라고 이를 바꾸어 써도 적절할 것이다. 물질 우주 이전부터 존재하는 무형의 세계에서 우리는, 자신이 존재함을 의식하는 능력과 스스로 말을 할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형임에도 무언가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태초부터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무형의 세계가 바로 우리의 내면이다. 지금 우리에게 눈..

오늘도 한 그루 나무이련다

오늘도 한 그루 나무이련다 / 신타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건 예전보다 적은 양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열매도 떨어지고 잎새마저 진 계절 젊어서는 쌓아두어야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내려놓는 게 아닌 조금씩 욕심을 내는 것이다 욕심을 조금만 낸다면 나눌 것도 버릴 것도 많을 터 열매가 그러하고 잎새가 그러하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하는 계절 봄 여름에는 욕심껏 물을 끌어올리고 갈 겨울에는 적게 아주 적게 끌어올리는 게 곧 내려놓음이다

신작 詩 2022.08.02

신의 사랑을 깨닫자

신의 사랑을 깨닫자 / 신타 눈에 보이는 바깥 어디에 심판자가 있고 지옥이 있지 않으며 내가 바로 심판자이자 내 안에 지옥이 있다 심판자가 되어보고 지옥을 겪어보아야 비로소 신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내 안에 천국이 있음 또한 깨닫게 되나니 스스로 자신을 심판하고 지옥과 같은 고통 맛보아야 신의 사랑 깨달을 수 있으며 평안과 기쁨 느끼게도 되나니 지금 여기서 멈추지 말자 내 안의 천국이 바로 저긴데 천국 앞에 있는 지옥에서 멈추지 말자 태양이 뜨기 직전의 어둠일 뿐이나니

詩-깨달음 2022.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