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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거울 / 신타 흔히 우리는 거울이 사물을 비춘다거나 또는 사물이 거울에 비친다고 한다 그런데 거울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비춘다는 말보다는 사물이 담긴다고 하는 건 어떨까 저절로 보이는 것일 뿐 거울이 의지를 내는 게 아니므로 비유하여 말할 때 앞으로는 사물이 거울에 담긴다고 하자 거울은 되 비추는 게 아니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일 뿐이다 만들어진 거울이 깨진다 해도 거울의 성질은 사라지지 않고 샘물이 담기거나 똥물이 담겨도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그 안에 우주가 담겨도 거울은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시공과 계절이 담기기도 하나 거울은 공 空조차 아닌 무시공 無時空의 평면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되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붓다의 가르침이다

신작 詩 2022.07.05

알랑방구

알랑방구 / 신타 그에게 존칭을 썼든 비위를 맞추고 알랑방구를 꼈든 그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를 남을 위한 희생자로 만들지 말자 우리는 누구나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사랑이란 목적이 아니라 사랑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에서 우러나오는 게 곧 사랑이요 함이 없는 함이다 이타와 이기가 있지 아니하며 '존재가 사랑이냐' 그리고 '목적 있는 사랑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를 위한 목적은 남을 위한다는 착각 속에 있고 모두를 위한 존재는 자신만을 위한다는 오해 속에 있다 나를 위해 사는 게 모두를 위해 사는 것이다 나만이가 아니라 남과 똑같이 남과 똑같은 나를 위해 살 일이다

신작 詩 2022.07.05

나비의 꿈

나비의 꿈 / 신타 절망은 불안의 새벽이다 두려움의 시간이다 온몸으로 껴안지 못하고 새벽의 한기를 외면할 때 일출은 늘 산 너머 일이다 우리는 떠오르기 직전의 태양이다 보물섬으로 향하는 나침반이다 이미 밤이 지나갔음이다 아침이 다가오고 있음이다 마지막 한 걸음 남았을 뿐 죽음이라는 환영조차 두팔 벌려 환영하자 날개가 젖는 일일 뿐이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면 날개 위에 햇살 퍼지리라 나비의 꿈이라고 가벼이 여기지 말자 내가 꾸는 꿈이 곧 나비가 꾸는 꿈이다

신작 詩 2022.07.05

한강

한강 / 신타 두물머리에서 나오는 뜨거움과 차가움 샤워기 통해 합수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아니라 내 안의 모습이 바뀌어야 할 터 겸손 옆으로 바짝 다가가 우물 안 개구리보다 더 낮은음자리표 호숫가 개구리로 살리라 모든 게 내 안에서 하나임에도 어느 한쪽은 내 것이 아니라고 밀어내거나 비난하는 삶이었다 높낮이가 서로 다르다 해도 파도타기 하는 삶일지라도 이 땅의 모든 개구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힘 수평선 아득한 호수 되리라 가슴이 온유한 남쪽과 이성이 냉철한 북쪽으로 나누어진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 두물머리에서 이제 하나의 강이 되자 지나온 길 서로 다르다 해도 더 많은 세월 함께였나니 뜨거움과 차가움이 하나 되는 양수리에서 너와 나 한강이 되자

신작 詩 2022.07.05

불꽃

불꽃 / 신타 낙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타오르는 것일 뿐 땅으로 내려앉는 건 내가 아니다 한때 불꽃으로 빛나던 늙어가는 청춘의 잔상일 뿐이다 자욱한 안개가 하얀 벽처럼 보이듯 하늘이란 파란 안개와도 같은 것 1층 위에 2층이 아니라 산란하는 빛의 공허이다 불꽃에 담겨있었다 해서 열기가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낙화하는 재에는 열기가 없다 우리는 한때 불꽃으로 타오르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열정일 뿐 허공이란 어디에도 있지 않으며 한때 역시 어디에도 있지 않은 시간이다 모든 게 내 안이다 내 안을 벗어난 건 없으며 따라서 안도 밖도 있을 수 없다 나밖에 없는데 안팎이 어디 있겠는가 내 안에서 일어나는 한바탕 불꽃놀이인 것이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신작 詩 2022.07.05

날마다 오늘

날마다 오늘 / 신타 파랗게 갠 하늘처럼 지평선이 보이는 땅처럼 날마다 오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기억 속 오늘을 어제라 하고 상상 속 오늘을 내일이라 할 뿐 몸뚱이가 있던 없던 오늘뿐입니다 현재 속에 미래와 과거 모두가 함께 엉켜있습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달린 일입니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요' 바이블에 나와 있는 구절처럼 무엇을 상상하느냐에 달린 일입니다 미래와 과거를 현재에서 사는 것입니다 떨어져 있지 않으며 지금 바로 여기

詩-깨달음 2022.07.01

개망초꽃

개망초꽃 / 신타 남원역사 한켠에 피어있는 꽃인지 잎인지 모를 황금빛 사진 찍어 SNS에 물어보니 모감주나무꽃이란다 능소화와 함께 하지 무렵 개화하고 열매로 염주 알을 만든다는 인터넷에 모인 사람들 덕분에 망초와 개망초 무슨 화두나 되는 양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 드디어 타파해보기로 했다 2미터까지도 자라는 망초에 비해 절반쯤 작은 키의 개망초지만 꽃은 망초꽃의 두 배쯤 크다 유월부터 길가에 흔한 개망초꽃 '개' 자가 붙은 이름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개나리, 개별꽃, 개망초꽃 계란꽃이라고도 한다 처음 본 모감주나무꽃 너무도 흔해서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개망초꽃 모두가 내 우주에 들어온 빛이다

신작 詩 2022.06.27

수수께끼

수수께끼 / 신타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닭은 혼자서도 알을 낳지만 달걀은 스스로 부화할 수 없다 빛이 먼저일까 어둠이 먼저일까 빛은 어둠을 만들고 없앨 수 있지만 어둠은 빛을 만들 수도 없앨 수도 없다 무한과 유한 중에 무엇이 먼저일까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으므로 무한이 먼저임은 당연한 논리 없음과 있음 중에 무엇이 먼저일까 있음이란 곧 유한을 나타내며 없음이 곧 무한 아니던가 없음(無)이라는 닭이 있음(有)이라는 달걀을 낳는다

詩-깨달음 2022.06.24

깨고 싶지 않은 꿈

깨고 싶지 않은 꿈 / 신타 잠자리에서 오전 내내 휴대폰 붙들고 있던 어느 날 죽고 싶지 않은 이유가 떠올랐다 남들 앞에서 뽐내고 싶었다 잘난 낯 한 번쯤 내세우고 싶어 지금 죽는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어리석게도 나이 들어서도 나이 들어서도 무얼 더 뽐내고 내세우려 하는 걸까 부러운 모습 내가 이미 가진 것임을 빛나는 그가 바로 나 자신임을 여전히 알 듯 모를 듯하다 종교 경전이 진리인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진리라고 믿는 것이듯 잘남도 못남도 밖이 아니라 내 안의 믿음 남에게 내세우지 않아도 누구나 잘났음을 문득 깨닫는다 삶과 죽음조차 깨고 싶지 않은 꿈일 뿐

詩-깨달음 2022.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