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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살아있는 것

지금 여기 살아있는 것 / 신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할지라도* 내 고통과 눈물과 우울 나는 다른 무엇과 바꾸지 않으리라 끝없이 멀리하고 싶던 세월 지나 지금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그들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고 오늘이 오늘이어서 좋다 한때는 그들을 피해 깨지 않는 잠 빠져들고 싶었지만 죽을 용기조차 없었던 내가 이제는 더없이 고맙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우울한 기분에 시달리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덤프트럭 앞으로 뛰어들고자 했던 순간 차에 치여 죽으면 나와 남은 가족은 괜찮겠지만 운전기사는 얼마나 억울할까 하는 생각 문득 떠올라 고통에 무감각했던 단 한 번의 시간이 지나갔다 절벽에서 용기 있게 뛰어내리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고 날게 된다는 서양에서 전해지는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 비유가 아닌..

詩-깨달음 2021.04.14

사랑의 선물

사랑의 선물 / 신타 죽음이란 한 번뿐일까 이생에서 한 번 죽고 나면 그걸로 영영 끝일지 모르므로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라면 남을 죽이는 게 당연하고도 옳은 일일까 눈에는 눈이 진리라면 낙엽은 자신을 떨어뜨리는 나무의 눈을 찔러야 하는 걸까 이듬해 태어난 잎은 작년에 떨어진 잎들의 복수를 위해 칼을 갈아야 할까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 걸까 그래도 하나뿐인 내 생명을 위해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살아가야 할까 한편으로는 사랑과 평화를 외치면서도 반복되는 태어남 반복되는 죽음이란 우리 삶이 영원하다는 사실의 반증이라는 추론 해봄 직한 추론이 아닐까 타인을 향한 사랑과 평화 아닌 자신을 향한 외침이 될 수는 없을까 조건부 사랑을 믿는 조건부 믿음이 아닌 조건 없는 무조건의 사랑을 믿는 깨달음..

詩-깨달음 2021.04.13

삶과 죽음의 역설

삶과 죽음의 역설 / 신타 있음으로 영원하길 바라지만 우리는 없음으로 영원할 뿐이다 그러나 없음에서 있음이 생겨나므로 우리는 있음으로도 영원할 수 있음이다 저마다 자유의지에 따라 둘 중 하나 선택하는 것인데 없음으로는 영원한 삶인 반면 있음으로는 반복되는 죽음이다 없음이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없음으로 있는 것이며 있음이란 아름다운 환상이기는 하지만 일시적인 있음에 불과하다 오감으로 감각되는 있음이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고로 오감의 있음은 환영이며 없음만이 영원한 삶이다 내가 드러나지 않기에 내 몸이 살아있는 것이며 신이 드러나지 않기에 우주가 움직이는 것이다 몸으로 태어난 나는 살아있는 있음이고 드러나지 않는 나는 살아있는 없음이다

詩-깨달음 2021.04.12

조팝나무꽃

조팝나무꽃 / 김신타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다 멀리서도 이밥처럼 배부르고 맛나게만 보였던 늘 궁금했던 조팝나무와 이팝나무 알고 보니 조팝나무는 키 작은 관목 이팝나무는 키 큰 교목이다 조팝꽃은 여느 꽃잎처럼 다섯 장이고 이팝나무꽃은 마치 무채를 썰어놓은 듯하다 어렸을 땐 스슥이라고 불렀던 조 대보름날 수수를 사 오라는 심부름에 스슥으로 알아듣고는 조를 사 왔던 기억 잘못 알아들은 나를 혼내든지 아니면 엄마 자신을 탓할 일이지 사 오면 물에 담가놓으라 해놓고는 스슥을 물에 담가놓았다고 열 살도 채 안 된 한 살 위 누나를 부지깽이로 때리던 엄마에 대한 원망스러웠던 기억과는 달리 노란 조와는 겉모양만 닮은 조팝나무꽃 올봄에는 가까이서 바라봐야겠다 예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멀리 사는 누나도

신작 詩 2021.04.09

판단하는 쓰레기

판단하는 쓰레기 신타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재활용 비닐을 담아둔다 라면 과자 커피믹스 봉지 등등 책상 겸 식탁 옆 구석에 놓인 비닐봉지를 본 여친, 쓰레기를 밖에 내놓아야지 왜 집안에 두느냔다 그럼 화장지가 담겨있는 비닐이며 집 안에 있는 비닐봉지도 다 쓰레기겠네? 어이없다는 그녀 표정이지만 내 집에서는 내가 법이다 쓰레기가 있는 게 아니라 쓰레기라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 생각이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다 빛의 속도보다 빠른 생각 안에 쓰레기를 쌓아두지 말자 비닐봉지가 아니라 오히려 판단이라는 쓰레기를 밖에 내다 버릴 일이다

신작 詩 2021.04.09

신神의 사랑

신神의 사랑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 라는 명제는 인간은 왜 두려움을 느끼는가, 라는 주제로 대치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거나 악한 게 아니라, 무언가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때 즉 평온할 때 우리는 한없이 선하게 행동하지만, 반대로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그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음입니다.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인과 인디언 학살을 벌인 미국인 등 모든 학살의 배후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두려움의 근원을 없애고자 하는 동기에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도 타인을 죽이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으며 심지어 동물의 생명까지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

복사꽃 피는 계절

복사꽃 피는 계절 신타 살구꽃 피고 벚꽃 피며 벚꽃 핀 뒤 복사꽃 피는 장마철에 수문 열리듯 앞다투어 길을 나선다 사람들 보라고 피는 것 아니며 제 새끼 생각해서 향기로운 것인데 벌 나비 옆 동네 사는 덕에 덤으로 보는 것뿐이다 복사꽃 피는 계절이면 초록 잎새도 아우성이며 안 보는 새 부쩍 큰 아이들 온통 푸른빛으로 꼬물거린다 나뭇가지에서도 땅속에서도 살아있다는 깃발 꽂으면 봄비와 손잡은 태양 빛으로 화답한다

신작 詩 2021.04.09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입니다. 천동설과 지동설이라는 물리적 현상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종교재판을 받는 등 엄청난 탄압과 희생이 있었으며, 생명과 신체, 명예에 대한 위협 때문에 자신의 확신을 꺾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신대륙 발견이라는 인류사적 사건에는 선구자의 담대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이라는, 물리적 현상이 아닌 무형의 자신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라면, 즉 대상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 대신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입니다. 선각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

깨달음의 서 202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