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나비처럼

무아 신타 (無我 神陀) 2020. 10. 21. 09:04

나비처럼

신타


햇살 가득한 가을날이면
식은 몸은 길을 나선다
밤새 젖은 날개를
아침 햇살에 말리는
한 마리 나비처럼
밖으로 나가
따가운 햇볕을 느낀다
차가워진 마음도 몸과 함께
용광로 쇳물처럼
한 줄기 되어 흐른다

우리 삶이 꿈을 꾸는 것이라든지
장자의 호접몽 얘기든지 간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일 뿐이다
스스로 자신을
좋은 부분과 싫은 부분
선하거나 악하거나
옳거나 그르다며
오른팔로 왼팔을 자르고 있을 뿐이다
안팎이 없고 오직 하나인데
둘로 나누고 셋으로 가르고 있음이다

내가 있지만 없는 세상과
내가 없으면서도 있는 세상!
전자는 꿈을 깬 장자가 사는 세상이고
후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된
또 다른 장자가 사는 세상이다
천 개의 장소에서 천 가지 모습으로
천의 장자가 살고 있다 해도
장자인 나는 언제나 하나다
손오공이 제 몸에 난 털을 뽑아
수천의 원숭이로 화현한 것뿐이다

지금 사는 세상이 꿈속의 세상이라 해도
내가 꿈을 꾸는 것이요
꿈을 꾸고 있는 나는,
허상이 아닌 실체이거늘
꿈을 꾸는 나조차 환영이라고 말하는
그대는 깨달은 어리석은 자일 뿐이다
그대 말대로라면, 그대는 지금
이 세상이 꿈이라는 꿈을 꾸고 있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제발 꿈에서 깨어나라며
가슴을 치고 답답해하는 꿈을 꾸고 있음이다

꿈을 꾼다 해도
나비가 아닌 내가 꾸는 것이며
변신을 한다 해도
내가 나비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나를 잃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다
깨달음도, 자신감도, 세월마저도,
내가 아닌 나비가 될 수 없음이다
꿈속에서 내가
나비 또는 원숭이로 화현한 것뿐이다

나비가 되어
자유로움을 날자꾸나
새보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자꾸나
꿈을 꾸고 있지만
우리는 결코 허상이거나 환영이 아니다
또한 내 몸에서 생기는
이름도 명예도 건강도 내가 아니며
「몸으로 된 나」 즉「몸나」도 내가 아니다
참나나 진아, 참 자아도 내가 아닌
하나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중이다

나는 나일 뿐이지만
나는 나를 알지 못한다
나 아닌 것들을 통해서
나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것들을 통해서
나를 스스로 알아가고 있음이다
고로, 내가 없기에 내가 존재한다
내가 있다면 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없기에 있는 것이며
지금 존재하는 나는 없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몸나이며
몸나가 아닌, 나는
영원한 무형이다
눈에 보이는 몸나가 아닌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는 무형이다
감지할 수 없기에
생각할 수도 없다
나를 대상으로 아무리 깊이 생각한들
상기증만 생길 뿐 답을 얻을 길은 없다
나는 느낌으로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모든 추구가 멈춰졌을 때
언젠가 나를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기대에 대한 포기조차 포기했을 때
우리에게 한줄기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언제 어디서 가을바람이 불어
봉선화 씨앗주머니를 터뜨릴지
또는 언제, 내가 무엇이라는 느낌이
의식 안에 떠오를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기대에 대한 포기조차 포기한다는 말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구절이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포기하고 싶은 그 마음조차
포기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아니라면 모든 것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스스로 좋아하지도 않는 마지막 하나
절망 또는 포기를 손에 꼭 쥐고 있음이다
이제는 마지막 그 하나마저 내려놓자
절망과 포기, 그것들조차 놓아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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