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애초부터 없었던 나

신타나 2021. 10. 29. 07:22

애초부터 없었던 나


우리는 기억 속의 나를 자기 자신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왕년에 잘 나갔었지."라고 말할 때의 나는 '과거의 나'이며, 또한 그러한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우리는 '현재의 나'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의 나 역시 기억 속에 있는 나일 뿐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는 기억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나는 '기억 속의 나'가 아니라 기억 자체입니다. 기억 자체, 느낌 자체, 생각 자체가 바로 존재 자체로서의 나입니다. '기억하는 나', '느낌을 느끼는 나', '생각하는 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아나 참나가 아니라 '기억 속의 나'를 말함입니다. 존재 자체를 자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 속의 나'란 관념으로서의 나를 뜻하는 것일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가리켜 환영 또는 허상이라고 합니다. 금강경에 나오는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이라는 구절의 의미가 바로, 우리 기억 속에 있는 '이미지 또는 관념으로서의 나'를 뜻하며, 이는 실상이 아니라 환영 또는 허상이라는 말입니다.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의 나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의 깨달음입니다. 죽은 뒤의 삶인 절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삶인 상대계에서도 우리는 유형이 아닌 무형으로 존재합니다.
'물질적 존재로서의 나'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즉 처음에는 있다가 지금은 없어진 게 아니라, 그러한 '물질적 존재로서의 나'는 허상이거나 환영일 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육체와 같이 유형의 물질로 존재하지 않고 영혼과 같은 무형으로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육체를 가진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태양이 날마다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감각의 오류일 뿐입니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감각적 오류에 의한 허상이거나 환영이듯이, 우리 인간이 육체를 가진 채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보이는 것도 허상이거나 환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유형으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감각적 착각에 의해 바로 앞쪽의 기차선로는 넓어 보이고 먼 쪽의 선로는 좁아 보입니다. 또한 시내에서 자동차 경적이나 주변 사람들 말소리 등이 자동차나 그 사람 입에서 나는 것 같아도, 그 모든 게 내 귓속 고막을 지나면서부터 소음으로 바뀌는 것일 뿐입니다. 이는 중학생 시절쯤 배웠을 기초 과학상식인데도, 우리는 배운 것 따로 실제로 인식하는 것 따로입니다.

도시에는 소음이 아니라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며 공기의 진동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공기의 진동이 우리 귀에 있는 고막에 닿으면, 그때부터 그게 소리 또는 소음으로 지각되는 것일 뿐이죠. 그런데 우리 신체 감각은 전혀 엉뚱하게 밖에서 소리가 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렇지만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이는 태양이 감각적 오류에 의한 허상이라고 할지라도, 태양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마찬가지로 인간인 우리가 물질적 육체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환영이거나 허상일지라도, 우리 자신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침에 떠올라 저녁에 지는 태양이 없는 것일 뿐 과학이 밝혀낸 것처럼, 지구가 그 주위를 도는 중심으로서의 태양은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이와 똑같이 물질로서의 인간 존재는 하나의 환영이지만, 무형의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무형의 영적 존재인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며, 또한 읽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극히 일부의 주장인 단멸론자들의 논리는, 지구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이는 태양이란 환영 또는 허상이므로 태양이 아예 없다고 주장하는 격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단멸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합니다. 우리 몸이라는 게 비록 실상이 아닌 허상일지라도, 나라는 존재가 아예 없지는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유형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 뿐, 무형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형의 존재!
그게 곧 나이며 또한, 신이자 전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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