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존재하는 자
우리는 물질적 존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신적 존재도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적잖이 당황하는 분이 있을 것 같네요.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닌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하고요. 바로 그것입니다.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닌 게 바로 우리 자신이며, 그것을 나는 무 無라고 일컫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일컬어 공 空이라고 합니다만, 공이라는 단어는 무언가가 있다가 지금은 없어지고 공간만이 남아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즉 공이라는 단어는 빈 공간 또는 허공과 똑같은 느낌을 우리에게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래는 있었다가 깨닫게 되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원래부터 없었던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는 '공'이라는 단어보다는 '없음'이나 '무'라는 단어를 선호합니다. 우리는 '잠깐 동안의 있음'도 '공'도 아닌, '없음'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없음'으로 존재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있음 즉 유형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없는 상태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쉽게 이해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시간도 공간도 없는 무시공의 상태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것의 있음. 그게 바로 우리 자신이고 영혼이며 신 神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것을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말로 해서는 전달이 제대로 안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경험한 한 가지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은 절망을 경험하곤 합니다. 이때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붙잡으려 애쓰거나, 아니면 절망이라도 계속 붙잡고 있으려 합니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마음의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나 희망도 절망도 없는 마음 상태에서 우리는 오히려 커다란 평안을 얻게 됩니다. 희망뿐만 아니라 절망조차 내려놓았을 때, 그 상태가 바로 우리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희망과 절망 모두를 내려놓는 게 바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두려움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절망감에 휩싸일 때도 두려움이 크게 다가오지만, 절망마저 내려놓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절망조차 내려놓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의지할 게 없다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게끔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백척간두 진일보라거나 또는 은산철벽을 뚫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극도의 두려움이 우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나는, 절망조차 포기하라는 말을 하고자 합니다. 절망조차 포기한다는 멋진 말은 절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절망을 거부하거나 또는 반대로 붙들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현실 상황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희망을 포기하게 되었다면, 이번엔 자의로 절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두렵지만 선각자의 말을 믿고 용기를 내어,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망에조차 의지하지 말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아 보세요. 용기를 내어 보세요.
마치 아찔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 심리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은 당신은, 무형의 존재가 되어 자유롭게 날 수 있을 것입니다.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적 존재도 아니고 관념으로 이루어진 정신적 존재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침묵 또는 자유로운 영혼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동안 스스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왔던 유형 그리고 무형의 존재는 환영이거나 허상일 뿐입니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즉, 붙잡고 의지할 것 하나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새로운 자유와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물질적 육체도 아니며, 그렇다고 심리적으로 의식되는 정신적 관념도 아닙니다. 의지할 것도 없으며 의지할 필요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침묵' 또는 '텅 빈 빛'입니다.
이것만 자각하거나 깨달으면 됩니다.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억을 되찾거나 자각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의지하고 있는 것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안개처럼 깨달음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아무것도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음, 무 無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무에서 자유로운 힘인 에너지가 나옵니다. 무에서 기쁨과 사랑이 흐릅니다.
무가 곧 우리 자신이자 신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될 수 있음입니다. 유 有 즉 있음에는 또 다른 원인자가 필요하지만, 무 즉 없음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없음이기에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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