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단지불회 시즉견성

신타나몽해 2021. 11. 10. 14:26

단지불회 시즉견성


보조 지눌 선사의 수심결에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이라는 구절이 있다. 다만 알지 못하는 줄 알면 그게 곧 견성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견성의 문턱일 뿐이다. 견성 이후 깨달음이 깊어지다 보면 문득 '단지불회' 즉 '알지 못하는 줄 안다'는 인식조차 내려놓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내가 주장할 게 하나도 없어야 한다.

이게 바로 불교에 말하는 내려놓음이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내맡김이다. 불교 반야심경에 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도 아니다'라는 내용의 구절이 있다.

알지 못하는 줄 아는 것도 하나의 견해 아니겠는가? 어떠한 것도 내가 답을 가지고 있으면 그게 곧 답이 아니다. 깨달음에 관한 의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지식이나 기억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내면에서 영감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고로 지금까지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졌던 보조 국사의 「단지불회 시즉견성」이라는 말씀도 다시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알지 못함을 아는 게 곧 견성이 아니라, 견성의 문 앞에 선 것일 뿐이다.

내가 분명 다른 것에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나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아는 것뿐만 아니라 알지 못함도 없음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단언컨대 스스로 자신이 무엇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거나 또는 무엇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결코 깨달을 수 없다.

그것이 내가 무엇을 안다는 것이든 알지 못한다는 것이든 또는, 무엇이라는 것이든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든, 어떠한 것도 내가 답을 가지고 있으면 그게 곧 답이 아닌 것이다. 다만 여기서의 답이란, 영감에 의한 것이 아닌 이성에 의한 지식적인 답을 말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