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단지불회 시즉견성 但知不會 是卽見性

신타나몽해 2021. 12. 31. 07:11

단지불회 시즉견성
但知不會 是卽見性


보조 국사 지눌 스님의 수심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만, 나는 이를 기존과는 다르게 해석할 것입니다. 기존의 해석은 불회(不會)를 '모름 또는 알지 못함'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나는 이를 글자 그대로 '모으지 않음'으로 해석하고자 합니다.

단지불회 시즉견성이란, '모으지 않고도 다만 아는 그것이 곧 견성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모으지 않는 것일까요? 다름 아닌 우리가 과거에 듣고 보고 배운 경험이나 지식을 끌어모으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을 의식적으로 끄집어내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지각하게 되거나 또는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흔히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끌어모으게 됩니다. 그런데 견성을 하게 되면 이와는 달리 끌어모으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기억이나 생각을 끌어 모으지 않는 상태에서도 저절로 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불교나 도교에서 강조하는 무위법 無爲法입니다.

유위법 有爲法과 무위법 無爲法이란, 우리 신체의 근육에 비교하자면 수의근과 불수의근이 될 것입니다. 팔다리에 있는 근육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수의근 즉 유위법이라고 할 수 있고, 심장을 비롯한 장기에 있는 근육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불수의근 즉 무위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유위법이란 우리가 평소에 하는 행동처럼 의식적으로 머리를 짜내 생각을 하는 것이며, 무위법이란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생각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성을 하게 되면, 애써 생각을 끌어모으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이 떠올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무위라고 하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만, 이는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의식적인 생각이 없는 것일 뿐입니다. 깨닫게 되면 매사에 애써 궁리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무언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저절로 떠오른 생각은 애써 궁리하고 고심한 것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단지불회 시즉견성'은 역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견성을 하고 나면 굳이 기존의 지식을 끌어모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기존의 해석처럼 '모르거나 알지 못함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중생이든 깨달은 자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우리는 '단지불회'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기존의 지식과 경험과 기억을 끌어모으게 됩니다. 그런데 끌어모으지 않고도 다만 알게 될 때, 우리는 깨달음을 이룬 것입니다. 수심결 내용처럼, 생각을 끌어모으지 않고도 저절로 아는 게 곧 깨달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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