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실체와 허상

신타나몽해 2022. 1. 28. 07:08
실체와 허상


우리는 자기 신체의 오감을 통해서 지각되는 대상이 실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을 실체라고 믿기도 하는데 이는 착각일 뿐입니다. 오감의 대상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자, 실체가 아니라 잠시 동안 실존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결국에는 사라져버리는 허상 또는 환영일 뿐이죠.

그리고 정말로 변하지 않고 영원히 실재하는 실체는 바로, 무 無 또는 텅 빈 침묵인 나 (또는 참나)입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유 有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 無가 존재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이 유형의 바탕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는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착각입니다.

지구와 태양 등 우주를 생각해본다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단단한 땅 즉 지구가 더 단단한 어떤 물체 위에 얹혀 있는 게 아니라 허공 중에 떠 있지 아니한가요. 더구나 그것이 허공 속에서 자전과 공전을 한다는 게 근대 과학이 밝혀낸 과학적 지식이지 않은가요.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과 무 즉 없음을 우리는 상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없음이 바로 우리 자신이며, 영원히 실재하는 실체라고 추론할 수도 있습니다. 없음이 바로 나 즉 진아 또는 참나임을 스스로 깨달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의식하고 인식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책상을 보고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책상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나요? 책상이라는 물질이 아니라, 오감에 의한 감각적 기억을 넣고 다닐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책상이 통째로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곤 합니다.

이는 책상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물질적 대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상에 대한 기억은, 대상을 볼 때마다 바뀌는 허상 내지 환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상이 실존하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의식 또는 관념 속에 있는 상이나 기억이 실존하지 않음입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표현하는데, 물질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또는 관념 속에 있는 상이나 기억이 모두 허상이요 환영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대표 경전인 금강경에도「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이라고 쓰여 있는데, 흔히 「일체유위법」과 「일체유위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합니다. 유위물 즉 물질적 대상은 종국에는 허상이거나 환영일지라도, 현재로선 실존하는 대상이죠. 반면 유위법 즉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관념이나 기억은, 실존하지 않는 허상이요 환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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