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351

환상으로서의 죽음

환상으로서의 죽음 / 신타 삶이 환상인데 죽음이란 말할 것도 없이 환상 아니겠는가 사람의 형체를 선택한 것일 뿐 형체가 곧 생명인 것은 아니며 우리는 아무것도 없음이자 없음이기에 모든 가능성이다 없음이기에 사라질 수 없는 영원한 가능성의 드러남이다 지금 세상에서의 드러남도 생명 드라마의 한 토막일 뿐인 환상임에도 삶으로 존재케 하는 없으면서도 있는 영원한 생명이다

신작 詩 2022.02.04

사랑이 사랑이 될 때

사랑이 사랑이 될 때 / 신타 모으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끌어모으는 게 아니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다 체에 걸러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더욱 성기게 될 때 체가 아예 닳아 없어지는 것이다 모든 게 담기면서도 생멸도 증감도 없는 오탁도 청정도 없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베푸는 게 아니라 사랑이 되는 것이다 다만 내가 사랑이 될 때 사랑이 사랑을 베풀 것이다

신작 詩 2022.02.04

과거로 가는 버스

과거로 가는 버스 / 신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구례 가는 완행버스 타려고 남원 노암동 정류장에 서서 20여 분은 족히 기다렸을 텐데 버스는 정류장에 다가서지 않고 오던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놀란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아스팔트길 복판으로 나가 손짓한다 다행히 저만치에서 차가 멈추기 시작한다 숨이 턱에 닿을 듯 뛰어가 가고자 했던 곳에 갔던 기억 문득 지금 다시 떠오른다 사과도 하지 않는 운전기사를 속으로만 나무라고 말았는데 같은 일이 지금 일어나면 어찌할까 과거로 가는 버스를 타지 않으리라 차가 그대로 지나쳤다면 가고자 했던 곳 가지 못했다면 하는 가정법 과거를 쓰지 않으리라 그냥 지나칠 때의 황당한 기분에 젖어 운전기사에게 삿대질하지 않으리라 지금 버스를 타고 있음에 오히려 감사함을 전하리라 이제부터는

신작 詩 2022.02.04

서로가 원하는 때

서로가 원하는 때 / 신타 설 연휴 마지막 날 우리는 헤어져야만 했다 생활권이 다르므로 일터가 서로 다르므로 4박 5일간의 긴 연휴 영육 간에 하나가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쓴 시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이윽고 나는 고속 터미널로 너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돌아서는 순간 잊는 나와 혼자 남는 게 못내 아쉬운 너 지금은 평행선 따라가지만 저 멀리 보이는 곳처럼 하나 되어 만날 날 있으리라 서로가 원하고 때가 된다면

신작 詩 2022.02.02

서어나무 숲

서어나무 숲 / 신타 서어나무 숲 가보지 못한 채 지난해엔 가을이 지나갔어요 지금은 눈 내리는 겨울 새삼 서어나무 숲 가을을 건너뛰었다는 기억이 아쉬움으로 다가오네요 남원 운봉에 있는 행정마을 어쩌다 마주친 이름도 생소했던 서어나무 앞으론 서어나무 숲에서의 노란 전시회와 잎들의 합창 함께하는 삶으로 살고 싶어요 어차피 윤회하는 계절 하얀 겨울에도 파란 봄 여름에도 서어나무 숲 가을로 물든 낙엽처럼 내려놓은 채 내맡기는 삶으로 살고 싶어요

신작 詩 2022.02.02

가난과 고통에 대한 용서

가난과 고통에 대한 용서 / 신타 참아야만 하는 줄 알았고 견뎌야만 하는 줄 알았다 애를 써야만 되는 줄 알았으며 그러다 지쳐 포기하고야 말았다 사람도 아닌 사람의 잘못도 아닌 가난과 고통에 대한 용서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나를 서운케 하고 화나게 했던 사람에 대한 용서를 생각하다가 가난과 고통에 대한 용서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가난을 마음 깊이 용서하리라 수많은 명의 살아있을지라도 몸과 마음의 고통 용서하리라 아니 내가 용서를 빌리라 그들의 모습 애써 멀리하고 부자와 행복의 꽁무니만 쫓던 내가 먼저 용서를 구하리라 나 자신과 타인의 실수와 잘못을 용서하듯 가난한 고통과 고통의 홍수 모두를 용서하고 사랑하리라

신작 詩 2022.01.25

벙어리장갑

벙어리장갑 / 신타 스마트폰에 메모하기 위하여 장갑 벗은 채 메모를 했더니 겨울 날씨에 손이 시렸으나 장갑 다시 끼자 괜찮아졌다 신은 인간에게 능력을 주었고 인간은 장갑을 창조하였으니 인간의 능력이 신의 능력이자 또한 우주에 가득한 에너지다 신은 비상한 능력을 갖췄으며 인간은 그렇지 못한 게 아니라 신의 능력 안에서 인간의 능력 신과 똑같이 발현되는 것이다

신작 詩 2022.01.24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 / 신타 내 사진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내 무덤가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되어 당신 앞에 서 있어요 내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누워있지 않아요 나는 죽지 않았거든요 천 개의 바람일 뿐이죠 당신이 바라는 것처럼 나는 언제나 마음대로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녀요 당신 앞에 있는 내 모습이 당신 모습이라면 좋겠어요 생각이 날 때마다 당신의 웃음 띤 얼굴 보고 싶어요 내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당신 앞에 서 있는 바람 천 개의 바람일 뿐이죠 * 1연과 2연, 작자 미상의 시 '천 개의 바람'과 임형주 성악가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노랫말 부분 인용

신작 詩 2022.01.22

앙금과 응어리

앙금과 응어리 / 신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응어리 없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라며 사회자가 동의를 구했을 때 나는 무언 無言의 동의가 싫어 "저는 없습니다."라고 기어이 내뱉었다 그리고는 혼자 잘난 체 하는 것 같아 "앙금은 있지만요."라고 부연했다 여러 날을 혼자 생각해 본다 '앙금과 응어리' 그게 그거 아닐까 말장난인 건 아닐까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개운치 않은 감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앙금이며 원한이나 울분 따위로 가슴속에 맺힌 감정이 응어리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지만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비 오는 날 흙탕물 함께 떠내려가는 게 앙금이라면 가득했던 흙탕물이 맑아진 다음에도 도랑에 남아있는 크고 작은 돌들이 응어리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이도 적은 사람이 나보고 한다는 소리가 뭘 그리 툴툴대느냐는 말..

신작 詩 202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