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향나무숲 2 천개의향나무숲 2 / 김신타숲에는 띄어쓰기가 없다향나무와 은목서 등이빽빽하게 서 있을 뿐늦가을 어느 빛나는 날구례 천은사 가는 길옆작고 조용한 향나무 숲모처럼 걸어보는 휴일띄어쓰기 없는 내 삶에쉼표 같은 아침이었다천 개의 향나무 숲에서안으로 담긴 향나무와밖으로 은은한 은목서향나무에 은목서 잇댄안팎으로 향기로운 삶내가 소망하는 삶이다 아침의 숲길 더불어 쉼표와 느낌표 있는 삶저녁이 있는 삶이고 싶다 신작 詩 2021.11.28
내 나이 마흔여덟 내 나이 마흔여덟 신타 차 타고 가는데 누군가 내게 물었지 나이가 몇이냐고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마흔여덟이라고 그럼 낼모레 쉰이네 초로의 신사라는 느낌이 뒤통수를 때리고 지나간다 아니 무슨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해보니 낼모레가 맞다 아직도 한참 남았거니 했는데 지금은 육십이 지난 나이 오십에서 육십을 넘어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간다 중학생 때쯤 배웠을 지천명 知天命의 나이 천명을 몰라서 그랬을까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 내 나이 마흔여덟엔 신작 詩 2021.11.26
빨랫줄 빨랫줄 신타 세상에서 묻은 때와 스스로 선택한 밤의 그림자 손빨래든 세탁기든 깨끗이 지우고 싶다 힘껏 두들겨 빨아 빨랫줄에 널고 싶다 세상은 날마다 나를 빨랫줄에 넌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이 밝기 전에 몸과 마음에 밴 어둠 새벽처럼 지우고 싶다 애써 지우지 않아도 스스로 아침이 된다면 빨랫줄에 걸린 어둠마저 조용히 빛을 따를 터 빨랫줄 너머 빛나는 아침이고 싶다 신작 詩 2021.11.26
향기 2 향기 2 신타 소국에 코를 대고 향기를 들이마신다 향기를 마시는 건지 숨을 들이쉬는 건지 바람처럼 향기가 담기는 것인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가을의 향기 마시고 싶어 소국 가까이 얼굴 들이민다 소국을 보며 가을을 가을이 짙어졌음을 느낀다 국화 향기에 내가 계절과 함께 흐르고 있다 국화 향기와 함께 가을이 흘러가는 것일지도 신작 詩 2021.11.26
가을의 진폭 가을의 진폭 신타 산들바람으로 시작되는 시월 초순의 가을에서부터 찬 바람 불고 거리마다 낙엽 흩어지는 11월의 하순까지 가을은 추 달린 시계처럼 흔들린다 때로는 봄날이었다가 때로는 겨울 같기도 한 가을이 단풍처럼 물들고 노을이 땅거미 지듯 하나둘씩 낙엽 쌓여갈 때 우리는 쓸쓸함에 흔들린다 출근하는 아침 시간 아스팔트길마다 낙엽들 무리 지어 흩날리는 날이면 지난날의 겨울 떠올리며 힘겨웠던 날들에 대한 기억 옷깃 여미고 종종걸음이 된다 여름의 뒤끝에서 겨울의 초입까지 흔들리는 가을의 진폭은 내 마음의 진폭이기도 하다 평안함에서 불안함까지 사랑에서 두려움까지 신작 詩 2021.11.22
단풍나무 아래서 단풍나무 아래서 신타 불타는 기운 받아 겨울 추위조차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뜨겁지 않아도 타오르는 듯한 빛 늦가을 단풍나무 아래 샘솟는 기운 푸른 봄부터 여름까지 스스로 불태웠던 열정과 번민 노을이 물든 고요해진 단풍나무 마지막 결단이 낙엽 진다 하릴없이 떨어질 것인가 기꺼이 내려놓을 것인가 단풍나무 아래서 여전히 겨울을 생각하고 있는 나 아직도 내려놓음과 내맡김 그 앞에서 흔들리고 있음이다 신작 詩 2021.11.21
이 빠진 동그라미 이 빠진 동그라미 / 신타 빛은 어둠조차 끌어안습니다 그러하기에 한낮에도 그림자가 있고 등잔 밑이 어둡습니다 완벽이란 아무런 흠이 없는 동그란 원이라고 생각했던 애써 찾던 조각을 만났을 때 입이 닫혀 말을 못 하게 되자 살그머니 내려놓고는 다시금 길 떠납니다 완벽만의 완벽이란 입이 닫힌 동그라미일 뿐 완벽하지 못함이 빠졌다면 그건 완벽이 아니지 않은가요 우리는 완벽을 꿈꾸면서도 이 빠진 동그라미가 곧 완벽임을 깨닫지는 못합니다 완벽하지 못함과 완벽이 하나로 어우러진 오늘의 삶이 바로 완벽이며 지금이라는 마루금에서 또 다른 마루금으로 향하는 여정임을 신작 詩 2021.11.20
산행 마친 뒤 산행 마친 뒤 신타 평소 같으면 운동 삼아서 걷고 다이어트 겸 건너뛰어도 되지만 오늘은 산행 끝나는 지점에서 혼자 점심 먹을 계획 세웠는데 저만치 식당 앞에 두고서야 지갑 놓고 온 사실 알게 되었다 주변 지인한테 연락해도 차편을 구할 길 없어 터벅터벅 걷는 발걸음 배도 고프고 발바닥도 아프다 낙엽 지는 가을 때문도 아닌 쓸쓸함이 슬며시 동행한다 중국집 앞 지나갈 때도 돈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짜장면 냄새가 다르다더니 내 발걸음이 지금 그렇다 맨발로도 올 임은 몸이 멀고 지인은 마음이 먼 토요일 오후 신작 詩 2021.11.20
요양병원 요양병원 신타 평소 안 가겠다 되뇌시더니 결국 요양병원에서 나오신 어머니 유치원 데려간 첫날 떨어지지 않으려 울던 딸아이 같다 요양병원이 없던 시절, 부부 외출할 때나 출근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아기 되어 버린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다가 빈집에 갇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수많은 가슴 쓸어내렸다는 어느 시인은 시로써 제 마음을 위로한다 하루 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빨갛게 부어 있는 손목 매듭 풀며 자장가 불러드렸단다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멀리 떨어져 산다는 핑계로 어머니 근황도 잊고 지내다가 위독하시니 와보라는 전화에 황망히 달려간 어느 늦은 밤 산소호흡기는 입안에 꽂혀있고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으시다 못난 아들 왔다며 손 잡아 드리니 손가락에 의식 남아.. 신작 詩 2021.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