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하순,
이제 겨우 여름의 시작이지만 덥게 느껴지는 건 한여름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던 진해 속천의 해안로, 그곳에 있는 ‘진해루’라 이름 붙여진 누각 밑이 시원해 보여 잠시 차를 세우고 누각 아래 놓인 벤치에 앉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속천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참으로 시원합니다.
그런데 이층으로 지어진 누각을 받치며 서있는 정사각형의 돌기둥이 자꾸만 눈에 거슬려, 시야 가림 없이 한눈에 바다풍경을 볼 수 있는 누각 맨 앞으로 자리를 옮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저 앞으로 가서 바다를 바라본다 하여도 여전히 실망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 앞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던 예전에도 이내 싫증을 내었던 적이 많으니까요.
해서 생각을 달리 했습니다. 뒤에 그대로 앉아 있기로...
그리고 돌기둥에 가려 안 보이는 부분을 안 보인다고 불만스럽게 갑갑증을 낼 게 아니라 안 보이는 부분은 나름대로 상상하기로 말입니다.
그러자 무언지 명확하진 않아도 머릿속에 아름다운 상상이 생겨나고 예전처럼 앞자리에 앉았다가도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또 다른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무언지 모를 아름다운 상상에 기분이 설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영화를 먼저 보고, 뒤에 소설을 읽었을 때처럼 영화 속의 영상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머릿속의 영상도 아름답듯이 말입니다.
막상 돌기둥 앞으로 나가면 이내 시들해질 기분도, 돌기둥 때문에 안 보이는 부분을 상상하는 일은 오히려 꽤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제게 짜릿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누각 밑에는 오십은 한참 넘게 뵈는 아줌마 서너 명이 모여 얘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으며 할아버지 두 분은 아예 벤치위에서 다리를 쭉 뻗은 채 낮잠을 주무시네요.
젊은 남녀 두 쌍은 나란히 앉아 얘기하거나 여자의 다리를 베게삼고 누워 그들만의 사랑을 키워가고 있으며, 저는 홀로 상상을 하며 즐거운 마음입니다.
이미 수없이 보았기에 특별할 게 없는, 돌기둥으로 드문드문 가려진 바닷가 풍경
그곳에 아름다운 상상을 더해 봅니다. 상상할 수 있기에 눈으로 모든 풍경을 다 볼 수 있을 때보다 쉬 지겹지도 않습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도 아름다운 상상이 있음을 이제는 알았기 때문이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상상이라는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 머릿속에 그려 냅니다.
마치 옷을 모두 벗은 여인의 모습보다 언뜻 언뜻 속살이 보이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남자들의 마음을 더 설레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란 김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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