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무아 신타 (無我 神陀) 2020. 1. 25. 05:21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 무슨 특이한 체험인 것으로 알고 있는 분이 있더군요. 제 경우에는 지난 해 8월말 기차 안에서, 열흘 전쯤 다른 카페 회원으로부터 소개받은 몽지릴라 유투브를 폰에 이어폰 꼽고 듣다가, 저 자신의 뒷모습을 본 것과 같이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현상을 무슨 깨달음으로 생각하는 분이 있더라구요.

그러나 이런 것이 결코 깨달음일 수는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죠. 여기서 본다는 말의 의미는 무슨 상을 본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나'라는 게 무엇인지를 자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기차 안에서 저는 아무 것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만, 저 자신의 뒷모습이 보인 순간부터 문득 기분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이후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밤새 잠을 안자고 낮에 듣던 유투브를 계속 들을 정도로 흥분 상태였으며 이러한 흥분 상태는 약 한 달 보름 정도 지속됐던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 지난 다음의 흥분 상태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여전히 흥분 상태였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흥분되던 시점에서부터 하루하루 지나면서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제 안에서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것들을 여기에 적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

저는 지금까지 외부세계를 제 몸밖의 세계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어느날 문득, 외부세계란 내 몸 자체도 포함되는 것이라는 통찰이 왔습니다. 그리고 며칠인가 더 지나서는 외부세계라는 것이 외부에 있지 않고 모두가 내 내면에서의 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득 자각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저도 처음에 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내가 굳게 믿어왔던 외부세계라는 게 없다니...

이후 여러 과정을 거치고 한달 두달 계속 지나면서 제 생각도 점차 안착되고 확실해졌습니다. 그래서 2020년이 시작된 지금에서야 제가 제대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느낌을 스스로 갖게 되었으며, 제가 가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텅 빈 빛'이다.

저는 되도록 불교식 표현을 자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공적영지'니 '적적성성'이니 하는 등의 말을 쓰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같은 자리를 말로 표현하는 것만큼은 같다고 봅니다.

'텅 빈 빛'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빛이 또 텅 비었다니?

얼른 감이 잡히지 않죠? 감이 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감이 잡힌다는 것은 머릿속으로 어떤 상을 떠올렸다는 것이거든요. '나'라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신체처럼 어떤 상이 아닙니다. 상상속에서 손으로 사방을 휘저어봐도 허공처럼 아무것도 잡을 게 없고 잡히는 것도 없는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나'를 '텅 빈 빛'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쯤에서 배웠을 과학지식이 있습니다.
소리는 공기의 진동에 의해서 전달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런데 시내에서 차가 빵빵! 하고 크락션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차 쪽을 바라보며 저 차에서 소리가 났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배운 것 따로, 느끼는 것 따로인 우리 인식의 오류일 따름입니다.

차와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도심은 사실 고요와 정적만이 흐를 뿐입니다. 거기엔 다만 무수한 공기의 진동이 있을 뿐이죠. 그리고 공기의 진동이 그 자체로 소음인 것은 아니고요. 공기의 진동이 우리 귀에 있는 고막에 닿았을 때라야 비로소 소음이 일어나는 것이고 이게 바로 청각작용입니다.

시각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눈 앞에 있는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단지 사물에서 반사된 빛이 우리 눈의 망막을 지났을 때 뇌 안에 있는 시신경 등을 거쳐 맺힌 상을 보는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 머리 속에서 맺힌 상이 아니라 실제 사물을 보고 있다고요? 착각입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착각입니다.

이래서 철학자 칸트는 이른바 외부세계의 사물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했으며 이를 '물자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도 처음엔 칸트의 통찰이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점차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환상'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었고 결국 지금은 나의 내면에 있는 상으로서의 물질우주는 환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물질우주를 포함하는 존재가 바로 '나'이며 이 '나'는 시간도 공간도 없는 초월적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초월이라는 의미는 공간적으로 먼 거리를 뜻하는 게 아니라 차원을 달리 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초월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바로 지금 여기에 똑같이 있으면서도 시간과 공간이 없는 차원에 존재한다는 뜻이지 기독교인들이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저 멀리 어디쯤에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라는 개념이 제가 말하는 '텅 빈 빛'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공이라는 단어를 안쓰는 이유는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그 의미가 너무 확장되어서 일부에서는 환상이라는 의미로 제대로 쓰기도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헛된 것이라는 의미로 쓰는 등 경전마다 또는 그것을 해석하는 조사나 스님마다 다르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텅 빈 빛' 이것이 바로 제가 깨달은 바인 '나'이며,
동시에 나는 환상인 물질우주와 형이상학적 우주 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아는 것이 곧 나를 보는 것이고
나를 보는 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당신이 거기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20. 1. 15. 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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