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빗소리 들으며

신타나몽해 2020. 2. 16. 05:29

지금은 2월 중순, 새벽 1시가 지났다.

어제 낮부터 조금씩 흩뿌리던 빗방울이 이 시간에는 제법 세차다.

2월이면 늦겨울인 셈인데 쓰고 보니 다른 계절엔 '늦' 자를 많이 붙이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에 '늦' 자를 붙인, 늦겨울이라는 표현은 듣거나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아무튼 이제 곧 3월이면 봄일 테니 겨울이 막바지에 이른, 늦겨울에 듣는 양철 지붕 위에서의 오케스트라, 한밤중에 들리는 빗소리는 나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엷은 두려움 같기도 하고 심란함 같기도 하며 쌀쌀함 같기도 한…

 

하지만 나는 밖에서 들리는 듯한 빗소리, 그리고 방안에 있는 안온함과 따뜻한 고요를 함께 느낀다. 반투명 갓으로 덮인 스탠드에서 나오는 은은하고도 밝은 빛, 여기저기 널브러진 읽다만 책들, 방금 전 다 마셔버린 복숭아 차가 담겼던 까만색 머그컵 등등이 나의 내면세계에 있는 환상이다.

 

빗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휴대폰 시계도 2시가 지났고. 새로운 아침이 오면 새로운 오늘이 열릴 것이다. 설령 구름이 태양을 여전히 가린다 해도 사랑스러운 빛은 비구름을 뚫고 나에게까지 다가와 내 눈 속을 파고들 것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그를 사랑하기에.

 

가능도 불가능도 모두가 가능한 이 세상! 불가능이 비록 실재하지 않는 개념일 뿐이기는 하지만 불가능까지도 가능한, 내가 눈에 담고 있는 이 세상이 참 좋다. 모든 것들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오직 가능태로서 존재하는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