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절망이란 없다

신타나몽해 2021. 1. 31. 11:11

절망이란 없다


절망이란, 회피의 대상이 아니며 극복의 대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 희망 또는 기대를 포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망마저 포기해야 하는 포기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절망을 포기한다는 게 절망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절망의 늪으로 자꾸만 빠져들기 때문이다.

사실 절망의 늪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희망이 자꾸만 늪에 빠지는 것 즉 희망이 사라지는 것일 뿐이기는 하다. 즉 절망이란 실체가 없다. 희망이 사라져버린 자리를 절망이라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므로, 절망이 있다기보다는 희망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다. 즉 희망이 있고 절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인 것이다.

희망이 있을 땐 희망에 부풀지만, 희망이 없을 때 우리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고로 모든 경우에 희망이 중심에 서 있는 것일 뿐, 절망이란 실체가 없는 하나의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즉 희망도 절망도 희망에 달린 일일 뿐이며, 희망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우리 삶에는 오직 희망만이 있다.

다만 희망이 없는 자리를 절망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므로, 저마다의 내면에 있는 희망에 대한 기준을 없애기만 한다면, 우리 사전에 절망이라는 단어는 영원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희망에 대한 우리 자신의 기준이 달라지면 희망의 모습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여기서 더 나아가 희망에 대한 우리 자신의 기준을 아예 없앤다면, 절망이라는 수식어가 앞으로는 필요치 않게 된다.

이 세상은 온통 희망 하나 뿐일 테니 말이다.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상황이 괜찮고 또한 괜찮아진다는 믿음 하나만 있으면, 우리 상황은 신의 품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괜찮아진다. 모든 게 괜찮고 괜찮아진다. 신의 품 안에서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신의 품 안인데. 신의 품 안에 있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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