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자기라는 보물찾기

신타나몽해 2021. 2. 16. 00:51


자기라는 보물찾기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감각. 감정. 생각. 의지 그리고 느낌 등등은 기억과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다만 감각에서 느낌까지 이 모든 것들은 마치 두더지 게임에서처럼, 산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기억은 언제나 이 모든 것들과 함께, 동시에 나타났다가 동시에 사라집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앞에서 열거한 감각. 감정. 생각. 의지. 느낌 등과 함께, 항상 쌍으로 나타났다가는 쌍으로 사라집니다. 즉 기억은 그것들과 늘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반면, 감각에서 느낌까지는 번갈아 가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나는 기억을 주체로, 감각 등을 객체로 봅니다. 다만 주객이 서로 분리된 게 아니라 늘 하나로 붙어 다니기 때문에 결국 주객이 따로 없는 셈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주체인 기억은 계속적이며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반면, 객체인 감각 등은 한정적이며 상대적으로 존재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불러다 쓰는 도구이거나 수단일 뿐이죠. 다시 말해서 기억이라는 바탕 위에 감각에서부터 느낌까지의 모든 객체가 번갈아 가면서 뛰어노는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의식 또는 마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곧 기억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기억을 전체 의식 중에서 하나의 작은 부분으로 생각해왔습니다만, 이제부터는 달리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에서부터 생각과 느낌에 이르기까지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래서 기억이 바로 전체이며 의식 또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식이나 마음 위에서가 아니라, 모든 게 기억 위에서 춤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기억이 곧 우리 자신이라고 감히 주장합니다. 따지고 보면 스스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이라고 할 수 없듯이, 우리가 기억을 잃으면 무엇을 두고 우리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기억이 전부이며 기억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인간인 우리가 사랑을 말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도, 기억이라는 바탕이 있기 때문에 그 위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모든 느낌과 행위, 생각, 감정, 감각 등 어느 것 하나 기억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인 견성 즉 깨달음이 결국 기억을 되찾는 것에 불과합니다. 나는 나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지구상에 몸과 더불어 태어나면서, 자신에 대한 기억을 일부러 소멸시킨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기억을 하고 있다면 굳이 몸이라는 물질 형상에 깃들어 지구에 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린 다음 그러한 자신에 대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진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초등학교 때 소풍 가서 일부러 감춘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 셈이죠. 우리 삶이란, 저마다 자기 자신이라는 보물을 되찾기 위한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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