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 6

견성 또는 깨달음

견성 또는 깨달음우리는 평소 머리 속으로 자신을 떠올립니다. 떠올리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든 아니면 개인적인 신체 모습이든,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른 모든 것은 대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대상인 자신은 진짜가 아니라 모두가 허상인 가짜입니다. 칼이 자신을 벨 수 없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무아 無我인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설한 무아란 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상이 가짜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상을 스스로 없애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나는 가짜이고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간직해온 자신에 대한 상이, 버려야 할 가짜요 허상이라는 말입니다. 머리 속..

깨달음의 서 2025.11.08

합일 合一이 아니라 무아 無我

합일 合一이 아니라 무아 無我나와 신이 둘이었다가 하나로 합쳐지는 합일이 아니라, 신 앞에서 나라는 자아는 죽어 없어지고 신만이 남는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신과 나와의 1:1 통합이 아니라, 내가 신에게 흡수 통합되는 것이다.물론 이렇게 신에게 흡수 통합된다고 해서 내가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나의 자아에서 벗어나 신의 자아가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견성이자 깨달음이며 구원이자 부활이다. / 김신타

저절로 들리는 순간 - 견성

저절로 들리는 순간 - 견성무언가를 반복하여 듣다 보면 또는, 누군가의 얘기를 계속 듣다 보면 저절로 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견성의 순간입니다. 이를 두고 생각하지 않고 다만 의식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만, 이런 설명보다는 저절로 들린다는 표현이 더 쉽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저절로 들린다는 얘기는, 스스로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되는 상태 또는 그런 순간을 말합니다. 다만 상대방의 말소리에 집중할 때 문득, 이렇다 할 생각 없이 저절로 그러한 순간이 다가오는데, 이러한 순간을 의식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오는 것입니다.이를 일부 그러나 많은 선각자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이러한 깨달음(견성)을 얻을 수 있다고 ..

깨달음의 서 2025.05.29

신과 함께하는 영원한 존재

신과 함께하는 영원한 존재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된다는 것!이러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러한 생각을 나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전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혼자서 화를 내고 도리질 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칠십이 가까워진 나이.산전수전 공중전에 내전까지 겪어본 나에게 있어, 이러한 생각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생각이 문득 떠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그 생각에 이어 캠핑카 타고 바다낚시를 가고 싶은, 내 버킷리스트가 실현이 안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내가 없어도 되는 마당에 버킷리스트가 무슨 대수랴. 물론 이러한 내 생각의 바탕에는"모든 존재는 영원하다.""몸이 아닌 무형의 존재인 우리 인간..

지금 여기

지금 여기 날마다 장면이 새롭게 바뀌는 현실이라는 영화.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끊임이 없이 상영되고 있지만, 현재 역시 영원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연극 무대 (또는 스크린)이다. 우리의 삶이 끊기지 않는 현실인 것처럼, 우리의 의식(또는 생명) 역시 끊어지지 않는 현재이다. 우리에게 삶과 의식은 영원히 상영되는 영화인 동시에 무대인 셈이다. 어쩌면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곧 지금이자 여기일 수도 있음이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스크린과 영화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일체형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영화를 볼 때처럼 스크린이라는 게 별도로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무대나 스크린에 해당하는 우리 의식도 영원하지만, 영화에 해당하는 우리 삶도 영..

깨달음의 서 2021.11.18

개체로서의 나는 사라져도 전체로서의 나는 영원하다

개체로서의 나는 사라져도 전체로서의 나는 영원하다 나란 없으면서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몸을 가진 유형으로서의 나 즉 개체로서의 나는 때가 되면 사라진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오감으로 인식할 수 있는 나는, 100년 안팎의 시간 동안 존재하는 일시적인 허상 내지 환영일 뿐이다. 이를 가리켜 불교에서는 무아 無我라고 표현한다. 반면 오감과 같은 감각으로는 인식되지 않지만, 느낌으로 인식될 수 있는 나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느낌으로 인식되는 나란 유형이 아니라 무형이며, 또한 개체로서 서로 분리된 부분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전체인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처럼. 한마디로 우리는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우주..

깨달음의 서 202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