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무저항의 저항

신타나몽해 2021. 3. 23. 03:00

무저항의 저항


나는 저항하고 싶다. 기존의 권위와 물리적인 억압에. 그리고 나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제한하고 가두어버리는 나의 고정관념에도 저항하고 싶다. 인도의 성자 간디의 무저항 운동도 사실, 무저항이라기보다는 무저항의 저항이 아닐까 싶다. 내 소년 시절과 젊은 날엔 외부에 있다고 보이는 권위와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으며, 쉰 살이 넘어서부터는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 즉, 자기규정에서 벗어나고자 오랜 세월 사유하고 생각을 거듭해왔다.

그런지 십여 년이 지난 육십 대 초반쯤 하나의 깨우침이 일어났다. 외부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이 변하는 것일 뿐이며, 외부에 있는 현실 세계는 늘 그대로라는 사실이 말이다. 외부 세계에 선이 있고 악이 있으며 정의와 불의가 있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에 그것들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이성이라는 잣대가 있음이 명료해졌다. 또한 내 안에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있든지 없든지 관계없이, 세상은 늘 그대로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즉 바깥세상에 선악이 있으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분별에서, 그 모든 분별이 외부 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세계에 있는 것임이 확연하게 깨달아진 것이다. 현실 세계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그저 사람의 행위가 있으며 사건과 사고가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한 행위와 사건 사고에 대하여 우리는 저마다, 자신을 중심으로 기준을 정해 놓고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등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 모든 구분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분별일 뿐 외부에 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분별과 판단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의식작용인 줄 전혀 모르는 채,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외부 현상인 것으로 착각한다. 내면에서의 분별과 판단인 줄 모르고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상대방이, 선하거나 악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한 얘기는 내가 여기서 아무리 말과 글로 떠들어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각자의 삶에서 스스로 배워 깨우쳐야 할 일이다. 그래서 삶에서의 고통이 우리에게 탁월한 스승인 것이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씩 깨우치는 것이며, 이게 곧 영적 진화이자 진보이다. 세상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으며, 세상에 선한 사람이 있고 악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은 언제나 지금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변하는 건 내면세계에 있는 나 자신 즉 우리의 인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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