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깨달음이란?

신타나 2021. 4. 9. 02:05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입니다. 천동설과 지동설이라는 물리적 현상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종교재판을 받는 등 엄청난 탄압과 희생이 있었으며, 생명과 신체, 명예에 대한 위협 때문에 자신의 확신을 꺾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신대륙 발견이라는 인류사적 사건에는 선구자의 담대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이라는, 물리적 현상이 아닌 무형의 자신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라면, 즉 대상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 대신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입니다.

선각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으나 결국 선각자와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열정과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하며 고난을 기꺼이 감수해야 합니다. 누구든 석가 또는 예수와 같이 깨달음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하며,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희망을 놓쳤을 때 찾아오는 절망조차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보겠다며, 끝까지 이를 부둥켜안고 있지 말고 마지막으로는 절망을 스스로 포기해야 합니다. 희망은 현실적 상황에 밀려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지만, 마지막 남은 두려움인 절망마저 기꺼이 버리고 자발적으로 포기해야 합니다.

절망조차 스스로 포기할 때 비로소 깨달음의 문이 서서히 열리게 됩니다. 이때부터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과 희망이 밀려들기 시작합니다. 아울러 추구심이 사라지며 자신이 무엇인지가 이성적이며 관념적인 인식이 아니라, 육체적인 체감 즉 느낌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다른 선각자들의 말과 글을 통해서, 동시에 스스로 사유를 거쳐서 자신의 느낌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보림일 것입니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시기를 만년설로 덮인 최고봉에 올라갔다가 하산하는 과정으로 비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80도쯤 바뀌었다가 360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기도 하며,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다시 산은 산이며 물은 물이라는 깨달음으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깨달음이란 자신에 대한 패러다임을 스스로 바꾸는 것이며,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방편은 다음과 같다는 게 내 주장입니다.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지름길이란 바로, 희망도 절망도 모두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특히 모든 애씀과 수고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절망했을 때, 바로 그때 마지막으로 절망을 스스로 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절망에 이르기 전까지 우리는 많은 추구를 거쳐야 합니다. 처음부터 추구심을 버리라는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깨닫게 되면 저절로 추구심이 사라집니다. 진리에 대한 끝없는 추구 끝에 절망을 하게 되는 것이지, 아무런 추구가 없는데 무슨 절망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고타마 싯다르타가 아버지인 국왕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왕자 자리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책무까지도 버리고 출가하여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으나, 6년간의 고행을 거치고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그는 절망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길을 걸어가다가 쓰러졌고 우유죽을 얻어먹고는 기력을 회복했을 때,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마지막 두려움마저 버린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움켜쥐고 있던 두려움 즉 절망을 내던진 것입니다. 이게 바로 불교에서는 내려놓음이고 기독교에서는 내맡김입니다.

내려놓았기에 석가모니가 되었고 내맡겼기에 예수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해보겠다고 애를 씁니다만, 결과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거나 아니면 종교에 의존하는 길입니다.

석가모니 또는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이 만든 종교에서 위안을 얻을 게 아니라, 선각자들이 갔던 길을 따라 우리 스스로 걸어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깨달음을 통하여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문적 지식이나 관념적 앎으로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몸으로 직접 나서야 합니다.

깨달음을 대신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며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았을 때, 바로 그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내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절망감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거나, 신에게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깨달음의 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린 신神  (0) 2021.05.09
자기규정을 버려라  (0) 2021.04.23
이전과 이후  (0) 2021.02.22
좌우명  (0) 2021.02.18
깨달음이 시작되다  (0) 2021.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