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자기규정을 버려라

신타나 2021. 4. 23. 22:50

자기규정을 버려라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자기규정을 버린다 해도 자기규정은 끊임없이 저절로 생겨난다.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규정을 만들어내며 그러한 자기규정은 에고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자기규정인 에고를 혐오하면서도 자기규정 즉 에고에 파묻혀 살아가는 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기규정 즉 에고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상태가 바로 깨달음이다. 이처럼 깨달음이란 이미 완성된 어떤 순간이거나 상태가 아니라, 완성으로 가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이제 막 지난 것일 뿐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고속도로 입구를 아직 찾지 못했거나, 또는 고속도로보다 산과 들이 더 좋은 사람인데 반해 깨달은 사람은 고속도로에 이미 들어선 것이다.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함은 더는 방황과 추구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다만 이러한 상태에서도 날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자기규정이라는 마음의 쓰레기를 매일 비우는 일이 그것이다. 자기규정이란 내면에서 날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생기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우월감•열등감이 바로 자기규정이며,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비교. 평가. 분석. 판단. 추론 역시 자기규정이다. 신체적인 활동과 수용적인 정신 활동을 제외한, 모든 정신 활동 즉 비교. 평가. 분석. 판단. 추론에 의한 정신 활동이 곧 자기규정이다. 그리고 내면에서 의식되는 자기규정을 우리는 자아 정체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로 정체성이 곧 에고이며 자기규정이다. 따라서 자기규정을 버린다는 말은 에고를 버린다는 말이며,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자칫 간과하게 되는 것은, 자기규정이라는 게 끊임없이 재생된다는 사실이다. 날마다 버려도 또다시 생성된다.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 또는 에고가 유지되는 것이다.

즉 자기규정. 에고. 정체성을 날마다 버리거나 내려놓는다고 해도 무엇 하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신앙 즉 종교적 믿음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규정이나 정신적 믿음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빈자리에 새로운 자기규정이나 신앙적 믿음이 이내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버려야 하는 것이다.

매일 버려도 거의 비슷한 자기규정이나 신앙적 믿음이 또다시 그 자리를 채운다. 그러나 자기규정이나 신앙적 믿음을 버리고자 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비슷한 게 다시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운다 해도, 이는 새 물이 들어오는 호수와 같다. 한 번 고인 물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해와는 천지 차이인 셈이다.

우리는 아무런 두려움을 갖지 말고 자신의 믿음과 자기규정을 날마다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최신 버전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 버전 즉 과거의 믿음과 자기규정도 자기 자신이며, 새로운 믿음과 자기규정도 자기 자신이다. 순간순간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되는 것뿐이다. 어느 것도 나 아닌 게 없다. 모든 게 나 자신이다.

그러니 아무런 염려하지 말고 날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자. 자신이 가진 재산과 같은 물질적이고 외형적인 것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관념과 같은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버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외형적인 물질이 아니라 내면적인 관념이기 때문이다.

내면에 있는 관념 때문에 외형적인 물건을 아끼고 애지중지하는 것이지, 그 물건 때문에 관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물론 물건이 내 수중에 들어온 때부터 물건에 대한 관념이 일어나는 건 맞으나, 물건에 대한 관념은 우리 기억 속에 이미 존재해 있기 때문이다. 즉 견물생심이기는 하나 물건에 대한 가치나 지식 등은 기억 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기에 견물생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뇌리 또는 기억 속에 있는 관념인 자기규정. 정체성. 에고. 신앙적 믿음 등을 모두 버린다 해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그 모든 것들이 곧 허상이자 환영이지만 또한, 새로운 허상과 환영이 곧 바로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허상과 환영일지라도 그것들이 왔다가 사라짐을 인식하는 것과, 그것들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자기규정이나 종교적 믿음 등은 계속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 일이며, 오히려 날마다 내려놓거나 버려야할 일이다. 버린 뒤에 비록 거의 같은 내용의 자기규정이나 종교적 믿음 등이 새로 생겨난다 해도, 버리거나 내려놓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내려놓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자기규정. 종교적 믿음. 정체성. 에고 등에 휩싸여 살게 된다. 한마디로 자유가 없이 정신적 노예로서 살아가는 꼴이다. 하늘이 무너질까 또는 땅이 꺼질까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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