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애착 2
애착이란 사랑하거나 좋아하기 때문에 특정한 사람이나 물건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반면 신은 우리를 사랑하면서도 애착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지 이를 허용한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부여한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부모가 흔히 그러하듯,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자녀를 자기 생각 속에 묶어두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녀의 생각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허용하는 게 진정한 자녀 사랑이다. 자녀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생각하며 걱정하지 않아도 그들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음이다.
차 조심, 사람 조심하라고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 자녀를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상대방의 뜻대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진정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다. 그런 의미에서 신의 의지란 없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곧 신의 의지인 것이다.
신이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형벌이라는 이름으로, 네로와 같은 폭군이나 히틀러와 같은 인간도 하지 않는 잔인하고 악랄한 행위를 인간에게 행한다는, 종교에서의 가르침은 정말이지 신을 욕되게 하는 망발이 아닐 수 없다. 종교에서의 신이란 인간에게 그리도 잔인하고 악랄한 존재란 말인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잔인하고 악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뜻대로 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부여해준 사랑의 존재다. 그리고 우리 자신인 생명은 생명체인 몸과는 달리 무한하고 영원하다. 따라서 어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잔인하고 악랄한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인간의 생명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에너지다. 생명이란 영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수명이란 생명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생명체에 있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몸을 비롯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적 존재치고 죽지 않는 게 없다. 그런데도 물질적 존재들이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장구한 지구 역사에서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생명체를 포함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수명은 유한해도, 물질 속에 깃들어있으며 물질을 창조하는 에너지인 생명은 무한하고 영원하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물질 안에 깃들어 있으나 동시에 물질의 창조자이기도 한 생명은, 인간의 몸을 비롯한 생명체와는 전혀 다르다. 생명이란 물질인 몸에 깃들 수도 있으나 몸에서 벗어날 수도 있음이다. 나이가 들어서건 병이나 사고로 인해서건 몸의 수명이 다한다 해도 생명은 여전히 살아있다. 많은 임사체험자들의 체험이 이를 여실히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생명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몸의 죽음에 지금과 같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즉 물질인 몸이 자기 자신이 아님을 확연히 깨닫고 인식한다면, 우리 몸의 죽음이란 반려동물의 죽음과 다를 바 하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의 몸뚱이를 무엇보다 더 사랑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사랑하면서도 애착하지 않는 모습이다.
자신의 몸을 무엇보다 더 사랑하면서도 그것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바로 애착이 없는 사랑이다.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돈이나 풍요 또는 타인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애착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돈이나 풍요가 다가오게 되며 타인의 사랑이 나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애착하지 않는 사랑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커다란 자유를 가져다준다.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대상에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사랑을 느낄 때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애착하지 않으면서도 대상을 사랑할 때, 우리는 그것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