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열매보다는 씨앗이 먼저

신타나초 2021. 12. 11. 07:15
열매보다는 씨앗이 먼저


무형의 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무형의 나 혼자 명상에 빠지거나 환희감 속에 젖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겐 때가 되면 울며 보채는 어린아이 같은 몸이 있으며, 사춘기 소년·소녀 같은 마음이라는 가족이 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도 욕구 충족과 즐거움 그리고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불교에서 말하는 공 空을 깨달으면 무엇합니까? 내 몸과 마음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거나, 남들 보기 창피하다고 아우성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무형의 존재임을 깨닫고 난 뒤에도, 나는 몸과 마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깨달은 뒤 나의 소망은 다시 경제적 여유와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무형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우주에서 나를 위해 봉사하는 몸과 마음을 위해서 말입니다. 내 사랑은 내 몸과 마음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지, 내 자녀들은 알아서 크겠지 하면서 다른 사람들 자녀를 위해 봉사한다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현시욕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제는 기도 방법을 달리하고자 합니다. 예전처럼 내가 소망하는 것을 신에게 이루어주십사 하며 간청하는 게 아니라, 내가 소망이 되고 또한 소망하는 대상이 되어 그들과 함께 뛰노는 것입니다. 그들과 내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신에게 내맡길 뿐입니다. 살면 살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 자세입니다. 이게 바로 신에 대한 믿음이자 사랑입니다. 무형의 내가 존재함을 깨닫고도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깨달음이란 '나'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없어질 때 우리는 또한,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내려놓음이며 내맡김입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내려놓는 것이며, 신에게 나에 관한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려놓고 내맡긴 상태에서 우리는 자유의지에 따라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내려놓고 내맡긴 상태에서 자유의지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몸과 마음과 영혼이 바라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몸과 마음, 영혼이라는 삼위일체가 가고자 하는 목표 지점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실천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씨앗을 심어야 하듯이, 사랑이라는 열매 이전에 사랑의 씨앗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어 이를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려 하기보다는, 땅속에서 싹을 틔우는 씨앗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열매보다는 씨앗이 먼저이며, 거두기보다는 심는 게 먼저입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만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사랑이 되어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으리라  (0) 2021.12.16
자기중심적인 사람  (0) 2021.12.14
영적 진화와 깨달음  (0) 2021.12.11
무화 無化  (0) 2021.12.11
나는 있는가 없는가  (0) 2021.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