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앙금과 응어리

신타나몽해 2022. 1. 21. 04:05

앙금과 응어리 / 신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응어리 없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라며 사회자가 동의를 구했을 때
나는 무언 無言의 동의가 싫어
"저는 없습니다."라고 기어이 내뱉었다
그리고는 혼자 잘난 체 하는 것 같아
"앙금은 있지만요."라고 부연했다

여러 날을 혼자 생각해 본다
'앙금과 응어리'
그게 그거 아닐까
말장난인 건 아닐까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개운치 않은 감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앙금이며
원한이나 울분 따위로 가슴속에 맺힌 감정이
응어리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지만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비 오는 날
흙탕물 함께 떠내려가는 게 앙금이라면
가득했던 흙탕물이 맑아진 다음에도
도랑에 남아있는 크고 작은 돌들이
응어리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이도 적은 사람이 나보고 한다는 소리가
뭘 그리 툴툴대느냐는 말에 점차 기분이 나빠져
전화를 확 끊어버리고는 이튿날
개량한복으로 차려입고 참석한 행사 모임에서
다른 지인이 어제 통화한 얘기를 꺼내기에
다시 화가 치밀어 언성을 높였더니
하기 싫으면 그만두란다

분장 때문에 30분 넘게 대기하고 있는데
예의 지인이 재차 다가와
일찍 와야 하는데 늦었다고 하길래
지금도 계속 대기 중인데 뭘 그러냐고 하니까
또 한다는 소리가, 하기 싫으면 관두란다
"알았어요. 그럼 갈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벗어두었던 웃옷을 챙겨입고 행사장을 나왔다

내가 두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가 먼저 사과를 해버릴까
며칠을 두고 스스로 괴로워하다가
내가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를 비롯한 모두를 스스로 용서하는 것이다
앙금은 남았지만
응어리는 사라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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