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풍 / 김신타
카페 옆 식물원에서
일행과 떨어져 혼자 구경하다가
차를 운전해야 하는 내가 안 보이자
다른 사람들은 지금 다 가는데
어디서 뭐 하고 있느냐며
조금은 짜증 섞인 전화가 왔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있음을 알아챘으나
지금 가고 있는 중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는
이내 일행을 만나 함께 돌아왔다
집에 와서 다른 일 하는데
아까의 일이 생각나면서
사람이 짜증 낼 수 있다는 게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게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혼자 피식하는 웃음이 났다
예전 같으면 현장에서 바로
뭘 그렇게 짜증 내느냐며
서운함을 참지 못했을 나인데
이제는 내 감정을 알아차렸을 뿐
아무런 흔들림 없이, 더 나아가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든다는 사실이
가을날 국화꽃처럼 향기롭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조금씩 익어가는 중인가 보다
안에서부터 익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햇살 가득한 오후의 바람이다
남원시 운봉읍 '허브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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