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욕망과 탐욕

신타나 2025. 4. 3. 12:15

욕망과 탐욕


탐욕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를 (그것이 자신이든 타인이든) 자주 목격하기에 우리는, 지상에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조차도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욕망이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받게 되는 참으로 아름다운 선물이다. 이 아름다운 욕망이 없다면, 우리 인간의 생존은 물론이려니와 지구라는 물질 우주조차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도, 꽃이 피고 지는 것도 하나의 욕망이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식욕·수면욕·성욕 등이 없다면,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존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도 종족을 이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탐욕이 좋지 않은 것일 뿐 욕망이란 이처럼, 우리가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몸과 마찬가지로 참으로 아름다운 선물임이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욕망과 탐욕 사이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것일까? 여기서 나는 단언한다. 욕망과 탐욕 사이에는 아무런 간격이 없다는 점을. 어쩌면 욕망이 바로 탐욕이고 탐욕이 바로 욕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에게 욕망도 좋지 않은 것이고 탐욕은 더더욱 좋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이 싹텄는지도 모른다.
다만 욕망이든 탐욕이든 그 배경이 중요하다. 자신만을 위하고자 하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면 그건 좋지 않은 것인 반면, 자신을 위하는 동시에 타인을 위하고자 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면 그건 참으로 좋은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욕망이냐 탐욕이냐가 아니라, 욕망이든 탐욕이든 그 바탕에 무슨 생각이 깔려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우리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이기적이다. 이타적일 수가 없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마음을 에고라는 이름으로 비난과 배척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한 줄기 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다. 나만을 위하는 에고적 이기가 아닌, 나와 함께 모두를 위하는 이타적 이기를 선택할 수도 있음이다.
이기주의 또는 이타주의라는 이분법 二分法에서의 정 正과 반 反이 아니라, 이타적 이기주의라는 불이법 不二法에서의 정반합 正反合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어느 한쪽만이 아닌 양쪽 모두를 아우르는 길이 다름 아닌 중도이자 정반합이다. 우리는 정에서 벗어나 반으로 가야 하지만, 반에서 다시 머무른다면 이는 결국 정에 머무르는 것이나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할 것이다.

보수에서 진보로 가서 다시 합일로 가는 것이 아닌, 진보라는 새로운 틀에 갇혀 버린다면 이는 보수와 다를 바 없는 진보가 되는 것일 뿐이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다. 악에서 벗어나 선으로 갔으면 거기서 역량을 키워, 이젠 악을 감싸안아야지 다시금 악에 맞서 싸우는 것은 악과 똑같은 선이 되는 것일 뿐이다. 자신은 선의 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착각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처럼 우리는 정에서 반으로 간 다음, 거기서 다시 합일로 가야 한다. 욕망이나 탐욕이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그 바탕에 어떤 마음이 깔려 있는지를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나만이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두를 위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임을 깊이 깨닫도록 하자. 이타적인 이기주의자가 되어, 중도이자 정반합의 길을 무소의 뿔처럼 걸어가 보자. / 김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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