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연기 緣起와 공 空

신타나 2025. 4. 16. 01:58

연기 緣起와 공 空


밖에는 내가 없다. 연기로 가득한 이 세상에는 내가 없다. 내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게 공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나라는 게 없다고 해서 모든 게 공하다는 주장은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한 착각일 뿐이다.
연기로 이루어진 몸과, 무형이기에 공한 내가 바로 지금 여기 이렇게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밖인 물질세계와 안인 내면세계는 차원을 달리하면서도 맞닿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지구라는 우주에 함께하지만, 오감으로 느껴지는 세상에는 내가 없고 오감을 벗어난 세상에 내가 있는 것이며, 따라서 오감을 벗어난 저승은 정신적 고통도 육체적 통증도 없는 오직 강 같은 평화가 흐르는 천국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가 몸과 함께 이승으로 온 까닭은 내가 무언지를 깨달아 알기 위함이다. 평안만이 있는 저승에서는 깨닫기가 쉽지 않은 때문이다.
이는 이승인 지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상에서의 삶이 마냥 안락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체험할 수 없고 체험을 통해 깨달을 수도 없기에, 지상의 삶에는 천상의 삶과는 달리 심적인 두려움이 있고 신체적인 고통이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 지상의 삶에서 평안과 안락만을 바랄 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통증이 바로 신의 은총이자 선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상의 삶에서 아무런 사건·사고가 없는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많은 임사 체험자들의 증언에서 볼 수 있듯이, 저승인 천상에서의 삶에는 사랑과 평안만이 가득하기에 그들은 고통으로 가득 찬 지상의 삶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거부하지만, 결국 설득당하여 지상인 이승으로 내려오게 된다.

우리가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천상이 아닌 지상의 삶이란 한마디로 개고생인 것이다. 그럼에도 안락한 집이 아닌 낯선 곳으로 기꺼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우리는 안락한 천상을 떠나 고통스러운 지상으로 기꺼이 여행을 떠나온 것이다. 삶에서의 기억이 짙게 남은 임사체험에서가 아닌, 시간이 흐른 뒤에는 누가 등 떠밀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말이다. 우리는 이처럼 지상의 삶에 대한 인식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공한 게 아니라, 나 아닌 것들이 모여 있는 유형의 물질세계일 따름이다. 그리고 거기에 무형의 내가 함께하고 있음이다. 나라는 것은 천상에서만이 아니라 지상에서도 무형이다. 무형의 내가 유형의 몸과 함께 지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즉 유형의 몸이 내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형의 육체란 연기적 존재일 뿐이며, 무형의 나는 무형이기에 공하다고 하는 것이다. / 김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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