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깨달음과 사랑

신타나 2025. 6. 11. 09:35

깨달음과 사랑


우리가 깨닫고 나면 중생에서 부처가 되는 것이지, 중생에서 깨달은 중생이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부처든 신이든 절대 존재는, 둘로 나누어져 있지 않으며 전체인 하나일 뿐이다. 깨닫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깨닫고 나면 분리된 자아라는 건 없고 모두가 하나의 부처이거나 신이 되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상대적인 나'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나'임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리된 나'라는 건 없어지고 '전체적인 나'만 남는다. '상대적인 나'가 없어지는 게 곧 무아 無我이고 '절대적인 나'가 바로 전체의 부분인 참나이다. 절대라는 건 둘일 수가 없음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불이법을 내내 강조하며, 기독교를 비롯한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는 유일신을 내세운다.

깨달음이란, 태양이 돈다는 천동설에 대한 믿음에서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는 것과 같다.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 즉 자아를 중심으로 우주가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우리 인간이란 유일한 절대 존재인 신(또는 부처)의 일부라는 믿음으로 바뀌는 게 곧 깨달음이다. 고로 우리가 깨닫고 나면 자신을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유일한 절대 존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아, 저마다 어깨에 진 짐을 내려놓고 할 일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서 깨닫게 되면 '참나'가 된다는 표현을 우리는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참나'란 또 다른 개인인 '아트만'이 아니라 전체로서 하나인 '브라만'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아트만이란 '지금의 나'를 가리키는 말이며, 브라만이란 '깨달은 아트만'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중생이 곧 부처"라고 하며, 힌두교에서도 "범아일여 梵我一如"라고 하는 것이다. 깨달은 중생이 곧 부처이고 깨달은 아트만이 곧 브라만이다. 고로 '깨달은 나'인 참나는 더 이상 분리된 중생이나 아트만이 아닌, 전체이자 하나인 부처이거나 브라만이 되는 것이다.

이는 '신과 나눈 이야기' 책에 나오는 것처럼, 분리의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가 모두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다. 몸으로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내면의 마음에서 하나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마음으로 타인을 미워하고 멀리할 게 아니라, 그가 바로 나와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이러한 미움의 감정은 점차 엷어지고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이게 바로 사랑의 감정이다. 스스로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나아가, 샘물처럼 흘러넘치는 사랑을 타인에게도 전하는 것이다. / 김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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