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마음 영혼이라는 삼위일체
몸(육체)이라는 지성체와 마음이라는 의식체 그리고 영혼이라는 영체가, 삼위일체와 같이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인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의 현재 생각처럼 몸이라는 건 하나의 물질에 불과하고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는 정신이라는 게 몸과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몸이라는 지성체 안에 육체와 정신이 모두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마음이란 건 자기 몸과 하나일 때도 있고 우주와 하나일 때도 있는 변화무쌍한 에너지이다. 그래서 마음이 좁을 때는 바늘 하나 꽂을 곳 없고 넓을 때는 바다처럼 모든 걸 받아들인다. 이를 마음이라는 단어가 아닌 의식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써서 표현해 본다면, 의식이란 자기 몸 안에서만 작용할 수도 있고 신이라는 우주 전체 안에서 작용할 수도 있다. 우주가 한마음인 것처럼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의식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혼이라는 영체는 몸이라는 지성체와 마음이라는 의식체와 함께, 스스로 '나' 자신을 찾는 일을 하고 있다. 천상에서 영혼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지상으로 오면서 스스로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린 것이다. 마치 학창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보물을 찾는 기쁨을 느껴보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운 것이다. 스스로 감춘 보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다.
몸이라는 지성체와 몸과 함께 부화뇌동하는 마음이라는 의식체와는 달리, 영체인 영혼의 관심은 돈이라는 재물도 아니요 명예나 권력도 아닌 오직 '나'를 찾는 것이다. 스스로 기꺼이 기억을 상실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천상에서 애써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억을 되찾은 뒤에는, 몸 마음과 함께 천상과 같은 세계를 지상에서 만들고자 함이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 세계 즉 유토피아를 지상에서 이루고자 함이다.
고로 유토피아를 꿈꾸기 전에 내가 무엇인지를 아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깨달음을 통하여 자신이 무엇인지 또는 누구인지를 알았다면, 이제는 내맡김으로 이어져야 한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 내맡김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맡김은 깨달음의 다음 단계로써, 내맡김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죽어 없어지는 무아이다.
깨달았다고 해서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사람은 제대로 깨달은 게 아니다. 제대로 된 깨달음은 자기가 죽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여래는 무아를 설파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죽어 없어진다는 말이 아무런 의지가 없거나 또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개인의 뜻이 아닌 전체의 뜻을 따르는 게 바로 자기가 죽어 없어지는 것이고, 이게 바로 무아의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전체인 신(붓다)의 뜻을 아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게 바로 고요함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내면의 충동 즉 영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특별한 누군가만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감이란 고요한 내면에서 느껴지는 충동이기에, 그러한 영감을 받았음을 스스로 느끼고 아는 사람이 드물 뿐이다. 그래서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골방에서 혼자 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명상이나 기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있을 수 있다면, 명상이나 기도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내면의 충동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내면에서 느껴지는 충동이 바로 신(붓다)의 뜻이며, 이러한 내면의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게 바로 내맡김이다. 이러한 내용은 기존에 발간된 책이나 인터넷 등에 모두 나와 있다. 이를 내가 재해석하고 재편집하는 것일 뿐이다. 이 또한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느껴지는 충동에 따라 내 몸을 통해 글이 써지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이 글을 읽는 것도 모두가 우리 개개인의 뜻이 아니라, 사실은 전체인 신(붓다)의 뜻에 따라 우리가 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사실을 체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머지 않은 내일일 수도 있음이다. / 김신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