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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깨달음

세 번째 깨달음우리의 본질은 소승적 무아이지 대승적 무아가 아니라는 세 번째 깨달음이 다가왔다. 모든 게 나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하나를 나라고 할 수 없다는 대승적 무아는, 텅 빈 나라는 소승적 무아의 상태에서 신과 합일이 된 이후에 가능한 존재 상태라는 깨달음이 말이다. 나라는 건 아무것도 아닌 그저 텅 빈 껍데기(껍데기조차 있지 않은)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게 나이기에 특정한 어느 하나를 나라고 할 수 없다는 대승적 무아는 하나의 조건적(본질이 아닌)인 나라는 사실과, 껍데기조차 없는 텅 빈 소승적 무아가 전체이자 절대인 신 안에서 신과 하나가 되었을 때 가능한 존재 상태라는 사실이 느껴졌다.즉 신과 분리되어서는 나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깨달음인 것이다. 내가 여기 있고 신이 저기 있어서는, ..

깨달음의 서 2026.01.09

내면 세계

내면 세계"눈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눈 감으면 떠오르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무시공의 세계, 거기가 바로 내면이다. 그 알 수 없는 내면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음이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마음이라는 것도, 무시공의 내면 세계에 자리하고 있으며, 심지어 전체이자 절대인 신마저도 우리 저마다의 내면 세계에 존재한다.그래서 주로 인도와 네팔에 널리 퍼져 있는 힌두교도의 인사인 '나마스테'가 "당신 안의 신에게 경배한다."라는 뜻인 것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전체이자 절대인 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서 2026.01.09

섬긴다는 말

섬긴다는 말신을 섬긴다는 말에 나는 오랫동안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신은 인간보다 우월한 능력의 존재인데, 굳이 인간이 그러한 신을 섬길 일이 무에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그런데 이제 와 생각하니 신을 섬긴다는 말은, 신과 늘 함께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신과 떨어져 지내는 게 아니라, 신의 옆에 늘 붙어 지내는 게 바로 신을 섬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섬기려면 늘 붙어 있어야 할 것 같긴 하다.그래서 나는 이제 늘 신과 함께하련다. 신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신과 늘 함께하는 게 나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마치 친한 친구처럼 늘 붙어 지내는 기쁨 속에서 말이다. 신은 나 대신 모든 것을 해준다. 생각하는 것, 결정하는 것, 기억을 떠올리는 것 등등 내가 하기 어려운 일을 신이 알..

깨달음의 서 202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