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깨달음

화두 話頭

신타나 2026. 5. 30. 00:47

화두 話頭 / 김신타


샤워하다가 문득
지금까지 스쳐 간 모든 이 덕분에 오늘 앞에 내가 서 있음이 느껴졌다
역사적으로 이름난 인물이거나 내 부모처럼 이름 없이 스러져 간 또는
나처럼 그렇게 스쳐 갈 수많은 얼굴 덕분에 오늘과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음이

중학교 가정통신문에 적힌 정서 불안정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무능한 아버지 닮지 않으려 했지만 역시 무능했던 아들의 아버지
계산적인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려 나름 애썼던 이십 대 청년에게도 하릴없이 칠십 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영구임대아파트 입구 주변에서 늘 마주치는 이웃들
멀리서도 고개 돌리고 싶었던 옷차림 이제는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게 된
그와 내가 다르지 않은
모양이 제각각인 아바타일 뿐임을 이제는 몸으로 깨달아 가는

생사가 없는 영원한 삶임을 깨달은 뒤에도
반복되는 무릎 깨짐이 있고 나서야
생긴 모습에서 자유롭게 된
추함으로부터도 드디어 자유롭게 된
이제는 증감 增減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남은 유일한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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