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깨달음
우리의 본질은 소승적 무아이지 대승적 무아가 아니라는 세 번째 깨달음이 다가왔다. 모든 게 나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하나를 나라고 할 수 없다는 대승적 무아는, 텅 빈 나라는 소승적 무아의 상태에서 신과 합일이 된 이후에 가능한 존재 상태라는 깨달음이 말이다. 나라는 건 아무것도 아닌 그저 텅 빈 껍데기(껍데기조차 있지 않은)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게 나이기에 특정한 어느 하나를 나라고 할 수 없다는 대승적 무아는 하나의 조건적(본질이 아닌)인 나라는 사실과, 껍데기조차 없는 텅 빈 소승적 무아가 전체이자 절대인 신 안에서 신과 하나가 되었을 때 가능한 존재 상태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즉 신과 분리되어서는 나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깨달음인 것이다. 내가 여기 있고 신이 저기 있어서는, 결코 신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라는 게 텅 비어 있어야 전체이자 절대인 신과의 합일이 가능한 것이지, 털끝만큼이라도 나라는 게 있다면 나는 결코 신과 하나가 될 수 없다. 완전히 텅 비어 있어야만, 전체인 신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라고 하겠다. 고로 내가 곧 신이라거나 중생이 곧 부처라는 말은, 나라는 게 없어야 즉 (소승적) 무아를 깨우쳤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공간이 비어 있어야 다른 무엇이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나라는 존재가 텅 비어 있어야 전체이자 절대인 신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승적 무아를 깨쳤을 때 비로소 대승적 무아를 깨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대승적 무아가 원래부터 우리의 본질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의 본질은 신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텅 빈 허공과도 같은 존재일 뿐이다. 텅 빈 거기에 신이라는 존재가 들어와 가득 채워지는 것이지, 가득 채워진 게 본래 우리의 존재 상태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나라는 건 사실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하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닫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신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나라는 껍데기조차 없는 텅 빈 껍데기 안에 신이 들어와야 비로소 채워질 수 있음이다.
신과 하나가 되었을 때 즉 신과 합일이 되었을 때, 나라는 존재는 비로소 존재 의미를 갖는다. 신과 하나가 되지 못했을 때 나는, 껍데기조차 없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과 하나가 되지 못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아상이나 자아 정체성이란, 한낱 허상이거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근원적 상태인 소승적 무아를 먼저 깨우친 다음, 겸허한 자세로 신에게 다가갔을 때 비로소 신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음이다. 즉 대승적 무아의 상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존재 상태이지만, 근원적 존재 상태인 소승적 무아를 먼저 깨달은 다음 나아갈 수 있는 단계라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