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352

소국

소국 신타 늘 지나다니는 동네 담장 옆에 가을이 열렸다 무더기로 담쑥하게 핀 국화꽃 흐린 기억 속에 담긴 누나를 닮은 하얗고 노란 들국화 열 살도 안 된 나이 엄마의 부지깽이를 피해 부엌 문턱 넘어가려다 넘어지고 매를 맞던 모습은 정작 본인은 잊었다지만 옆에서 본 내겐 오랜 상처로 남은 서른이 지나고 다시 서른이 지난 세월의 씻김에도 소국을 읽는 순간 눈물이 번진다 그립고도 아픈 시절 엄마와 누나와 어린 나 그리고 먼 곳의 아버지

신작 詩 2021.10.15

기타와 자동차

기타와 자동차 신타 처음 보는 기타를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도 막무가내 이 방 저 방 끌고 다니며 부딪는 손자의 모습 지켜보는 고영조 시인의 시˚를 읽다가 자가용을 처음 장만했던 때를 회상한다 집 대문을 들어서노라니 다섯 살 난 딸 아이가 제 또래 친구들과 승용차 지붕 위에 올라가 구르는 모습에 놀라 "앞으로 여기서 놀면 안 돼!" 엄한 표정 지으며 나무라던 이십여 년 전의 기억, 재물 앞에 겁먹은 내 모습과 놀란 딸 아이의 재빠른 동작 촉촉한 눈물 번져온다 소유를 모르는 어린 딸에게 내 목소리와 표정은 그의 삶에 어떤 흔적이 되었을까

신작 詩 2021.09.11

멸치는 칼슘이 아니다

멸치는 칼슘이 아니다 신타 밥 먹다가 멸치조림 집으며 아이들에게 칼슘이 많은, 영양가 있는 것이므로 많이 먹으라고 얘기하는 엄마 하늘을 바라보던 중, 여자가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게 보여요'라고 말하자 '그건 대기가 안정되어 지상의 먼지가 높이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죠' 라고 자상하게 설명하는 남자 멸치는 멸치일 뿐 칼슘이 아니다

신작 詩 2021.09.09

소래포구

소래포구 신타 2시간여 인천역에서 다시 소래포구역으로 그녀와 함께 하는 여행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가을 전어와 새우구이 소주잔 속에서의 그녀 고백은 재회 직전 다짐한 굳은 마음이 만나는 순간 눈 녹듯 녹았다 한다 남도에서 기차로 서울까지 올라오면서 사이사이 나도 몰래 불안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지금은 소래포구, 소래가 무슨 뜻일지 몰라도 작은 기쁨이, 내 작은 사랑이 돌아온다는 뜻임에 틀림이 없다

신작 詩 2021.08.28

무아 無我

무아 無我 신타 불같았던 성정이 처서가 지난 여름처럼 그렇게 숙어 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가을이 오고 있음이다 더러는 여름부터 가을인 사람이 있고 가을임에도 늦더위가 무성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 모든 게 한바탕 연극이라면 스스로 쓰는 한 편의 소설이라면 어찌하겠는가 내가 없을 수 없지만 보이고 감각되는 모든 것이 하나의 환영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시간과 공간이 없는 무형의 내가 존재한다면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무아란 내가 없음이 아니라 유형의 내가 허상이라는 뜻인 걸

신작 詩 2021.08.26

소나기

소나기 신타 말복이었던 날 햇볕이 따갑더니만 소나기가 쏟아진다 해는 반짝 떠 있는데도 갑자기 소낙비 내리는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에서인지 모르지만 참을 수 없는 갈증이었나 보다 육지였는지 바다였는지도 알 수 없는 한바탕 쏟아지고 나서도 세상은 다시 그대로다 내가 죽고 없어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아무렇지도 않듯이 내가 없는 자리를 누군가는 슬퍼하길 바랄 게 아니라 내가 있는 자리를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채우자 모든 게 나를 위해서 일어나므로 나를 위해서 몸이 존재하고 일상이 닥쳐오며 신의 사랑이 있고 여름과 겨울이 있으니

신작 詩 2021.08.10

울창한 여름

울창한 여름 신타 아침 출근길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올여름 들어 처음 듣는 듯한 칠월 내내 울었을 터인데 팔월 초순에야 듣게 되다니 그동안 무엇을 들었던 것일까 자전거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에 귀가 멀었을까 출근 뒤의 일에 눈이 멀었을까 소리를 못 들은 게 아니라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리라 현재를 살지 못한 때문이리라 귓전에서 처음 맴돈 날 나의 여름이 울창해진다 매미 소리 길게 이어지고

신작 詩 202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