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눈 이야기 & 람타

<신과 집으로> 중에서

무아 신타 (無我 神陀) 2020. 2. 25. 13:51

너희가 사랑을 따를 때, 너희 영혼이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이끄는 사랑에 너희를 맡길 때, 너희는 그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투쟁은 중단될 것이고, 너희는 하나임을 알 것이다.

융합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이것이다. 본성에 전면적으로 잠길 때 벌어지는 일이 이것이다. 이건 치유효과를 극대화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거나 끝내는 방식이다.

 

 

혹은 삶을 끝내는 방식이기도 할 테구요.

제 말은 물질 삶을 사는 동안에는 일부 사람들만 이런 융합, 이런 하나로의 녹아듦을 체험할 수 있지만, 죽음의 순간에는 모든 사람이 이런 체험을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니냔 거죠? 제 말이 맞나요?

 

 

너는 아주 정확하게 아는구나. 아무도 배제되지 않고, 아무도 실격되지 않으며, 아무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요?

 

 

죽음의 세 번째 단계 이후로는 믿음이 너희 체험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이 그렇게 합니까?

 

 

소망이.

 

 

우와. 정말 우와~ 군요.

 

 

죽음의 세 번째 단계는 온화하게, 그리고 너희가 원하는 만큼 신속하게 재동일시reidentification의 과정을 밟도록 설계되어 있다.

 

죽음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너희가 아직도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하기에, 너희 마음속에 있는 것이 너희 체험을 지시한다. 그래서 너희 믿음이 너희 체험을 창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동일시를 내려놓고 나면, 너희 체험은 너희가 믿는 바가 아니라 너희가 바라는 바에 의해서 창조된다. 이것이 '극락'이라 불리는 체험의 시작이다.

내가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너희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죽음의 이 세 번째 단계를 체험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만요. 전 당신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융합의 순간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하신 건 알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은 적은 없는데요.

 

 

우리는 같은 걸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분리 개념의 소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건 너희 육신이 죽는 순간에도 일어날 수 있고, 다른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의 세 단계는 재동일시의 세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이러하다.

 

1. 몸과의 동일시를 내려놓는 것.

2. 마음과의 동일시를 내려놓는 것.

3. 영혼과의 동일시를 내려놓는 것.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그런 측면들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우린 무엇과 동일시 합니까?

 

 

아무것과도.

 

 

아무것과도요? 우리가 전혀 아무것과도 동일시하지 않는다고요?

 

 

특정한 어떤 것과도 하지 않는다.

너희가 자신을 뭔가로 여기거나 그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순간, 너희는 자신을 한정된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본성은 한정되어 있지 않다. 융합의 순간에 너희는 전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데, 이건 특정한 어떤 것과도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느 것과도 전혀.

 

부처는 이것을 완벽하게 이해했고, 해냈다. 많은 선각자들이 이것을 해냈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동안에 이것을 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영혼들이 죽을 때는 이것을 해낸다. 이것이 죽음의 역할이다.

 

 

그러니까 이건 육신을 떠나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일어나는 일인 거군요.

 

 

그렇다. 그리고 죽음의 세 번째 단계에서 너희는 자신의 경이로운 완벽과 만난다. 그것은 신의 눈에 비치는 너의 모습이다.

 

 

그거 정말 멋지군요. 정말…… 참으로 멋지군요.

 

 

그리고 너희는 아직 어떤 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본성과의 이 융합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건 시작이다.

 

 

<신과 집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