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보물찾기

신타나초 2022. 8. 15. 01:40

보물찾기


태초에 생각, 말(말씀), 움직임이 있었다. 여기서 움직임이란, 무형 無形인 생각과 말이 고정된 게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뜻이다. 또한 생각을 '의식'으로, 그리고 말을 '소리'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상관없다. '태초에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 있었을 뿐 아니라, 무형의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있었으며, 역시 무형의 존재임에도 고정됨이 아닌 움직임이 있었다'라고 이를 바꾸어 써도 적절할 것이다.

물질 우주 이전부터 존재하는 무형의 세계에서 우리는, 자신이 존재함을 의식하는 능력과 스스로 말을 할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형임에도 무언가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태초부터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무형의 세계가 바로 우리의 내면이다. 지금 우리에게 눈을 비롯한 오감으로 느껴지는 현실적 물질 우주는, 태초에는 있지도 않았다가 내면에 있는 능력을 통하여 나중에 창조된 세계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맨 처음 자각한 이가 바로 석가모니 붓다이다. 그래서 불교 경전인 금강경에 나오는 것처럼, 현실 세계 즉 물질 우주가 환영이며 그림자 같은 허상이라고 붓다는 설파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물질 우주가 헛되고 허망한 세계인 것은 아니다. '신과 나눈 이야기'를 비롯한 오늘날 수많은 영성 관련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개념에 불과한 정신적 가치를 육체를 통해 구현하고 체험하기 위해 지구상에 기꺼이 태어났음이다.

고로 지구를 비롯한 물질 우주가 허상이며 환상의 세계이기는 하지만, 존재 이유가 뚜렷하고 존재 가치 또한 소중한 세계임이 분명하다. 우리의 몸뚱이 또한 물질 우주와 같다. 환상이자 허상이지만, 그 또한 존재 이유와 가치가 우주만큼 크고 소중하다. 따라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뚱이를 하찮게 여기는 어리석음을 이제는 버리자. 자신의 몸뚱이를 자신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에서도 벗어나야 하지만, 자신의 몸뚱이를 똥자루나 무슨 고깃덩이로 비유하는 어리석음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우리 자신은 현실 세계에 있는 몸뚱이가 아니라, 눈에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으며 다만 의식될 뿐인 무형의 내면이다. 그렇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몸뚱이도 매우 소중한 환상이다. 소설이나 영화가 비록 실제가 아닌 가상일지라도,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과 간접 경험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말이다. 붓다도 6년간 지난한 고행을 통해서도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다가, 정신적 절망 끝에 기절해서 길바닥에 쓰러진 그를 지나가는 사람이 발견하고는 우유죽을 먹여 살렸다. 다시 몸과 마음의 기력을 회복한 그는 자신의 몸뚱이가 소중함을 깨달은 뒤, 보리수나무 아래서 명상 중 어느 날 새벽 샛별을 보다가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밖에 있는 진실을 우리가 깨닫는 게 아니다. 우리 내면에 이미 담겨있는 진실을 어렵사리 다시 깨닫는 것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신과 나눈 이야기' 책에서처럼 다시 기억해내는 것이다. 일부러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음이다. 마치 일부러 감춘 물건을 찾는 놀이인 보물찾기 하듯이 말이다. 몸으로 태어나면서 기억을 없애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감추었다가, 기억을 되찾는 엄청난 보물찾기 놀이인 셈이다. 보물을 찾는 동안에는 즐거움과 고통이 교차하지만, 어렵사리 자신을 찾은 다음에는 충만하고도 여여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찾은 다음에도 여전히 깨달아 가야 할 게 많지만, 이는 하산하는 과정에서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갈 때 보는 기쁨과 같이 수월하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의 시 '그 꽃'에서처럼, 우리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난 다음에도 계속 깨달아야 할 게 있다. 한마디로 우리의 내면에는, 외부 현실에서와 같이 끝이란 없다. 육체적으로는 죽음이라는 끝이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모든 게 영원하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란 육체적 몸뚱이가 아니라, 정신적 영혼이라는 사실을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리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정신적 존재인 우리에게 죽음이라든지 끝이란 없다. 영원한 성장만이 있을 뿐이다. 육체적 체험을 통한 성장뿐만 아니라, 영적 세계에서도 우리는 늘 성장한다. 성장 또는 변화가 아닌 고정 또는 정지란 그 자체로 생명이 아닌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원이란 어느 한순간도 정지함이 없는 끊임없는 흐름을 뜻한다.

'단상 또는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짐  (0) 2023.02.13
수용과 거부 그리고 선택 (사랑, 두려움, 자유의지)  (0) 2022.11.18
정체성의 꼰대  (0) 2022.07.24
몸에 밴다는 말  (0) 2022.04.08
시간의 광야  (0) 2022.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