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텅 빈 기억

신타나몽해 2022. 12. 21. 01:10

텅 빈 기억


'기대라는 희망'을 포기하고, '포기라는 절망' 또한 포기하는 것. 이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 즉 양변을 여의는 것이며, 내려놓음이자 내맡김이다. 자신이 무엇을 한다거나 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바이블에 나오는 다니엘 이야기에서 다니엘이 사자굴에 넣어졌을 때 그가 희망을 가졌겠는가?
그 순간 그는 희망을 버리고 모든 것을 신에게 내맡긴 것이다. 다만 평범한 우리들처럼 희망 대신 절망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절망조차 기꺼이 내려놓고 오직 신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긴 것이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말이다.

희망도 절망도 모두 버릴 때 즉 포기할 때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대라는 희망을 붙잡고 있는 한, 우리는 포기라는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포기라는 절망을 붙잡고 있는 한, 우리는 죽음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희망과 절망을 모두 내려놓는 것만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희망과 절망 즉 기대와 포기를 모두 내려놓을 때 우리에게는 텅 빈 기억만이 남는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고 모든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텅 빈 기억!
기억이 바로 우리 자신이자 근원이다. 기억이라는 우리의 근원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동시에 모든 기억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특정한 기억 즉 기억 자체가 아닌 기억된 상을 붙들고 거기에 집착하곤 한다.
기억이란 형상이 없는 무형이지만 이를 (형상을 갖고 있는) 거울에 비유한다면, 기억된 상에 집착하는 것은 거울 속에 담긴 특정한 상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고 부질없이 애쓰는 것과 같다.

그리고 희망도 절망도 포기하는 삶이라 해서 외부적으로 특별한 것은 없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밥 먹고 사는 삶이지만 내면의식이 좀 다르다고나 할까. 그러니 그러한 삶에 대한 기대를 갖지 마시라. 또한 기대 없는 삶에 대한 절망도 갖지 마시라. 석가여래도 깨닫고 난 뒤 동냥 다니며 밥을 얻어먹었다.

감각, 생각, 감정 등 모든 것은 기억이라는 게 내 주장이다. 기억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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