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배고픈 소크라테스

신타나몽해 2023. 9. 3. 03:56

배고픈 소크라테스 / 김신타


나는 혼자서 생각했다
동물의 사전엔 고뇌가 없을 거라고,
상대가 눈에 띄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할 거라고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 역시
불행은 멀리하고자 하며
행복만을 가까이하고자 한다
배부른 돼지가 롤 모델인 것이다

행복 속에 불행이 들어있음과
불행 속에 행복이 들어있음 또한
모두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리라

타인의 행복한 웃음 속에서
그들의 불행했던 과거를 볼 수 있어야 하고
타인의 지금 불행 속에서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하리라

불행이 접지되지 않은 행복이란
번갯불에 언제 타버릴지 모른다
내 행복을 땅으로 흘려보내라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하라

불행도 그렇지만
행복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
행복에는 불행이 필요하고
불행에는 행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행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을 갈구하는 것 아니던가
행복을 주문하는 만큼
불행을 멀리하려 하지 말라

불행을 추구하라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행복을 소망하고 추구하되
조바심 내지는 말자는 얘기다
행복과 불행 모두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내버려 두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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