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겸손한 어지럼증

신타나 2025. 8. 14. 02:27

겸손한 어지럼증 / 김신타


구부정하니 몸이 굼뜬 분들을 봐도
이젠 속으로 답답하지가 않다
육십 중반이 넘은 나이에 얼마 전
집에서 칵테일 해서 마신 소주 두 잔

오후쯤에 냉장고 뒤져 혼술 하고는
동네 복지관에서 저녁밥 먹고 오는 길
타고 오던 자전거에서 까무룩 졸아
아파트 담장에 부딪힐 뻔하길 두어 번

이윽고 집으로 오는 오르막에서
자전거에서 내렸는데 문득 어지러워
안장에 머리를 얹고 한참을 쉬었음에도
며칠 동안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았다

신경과와 내과를 거쳐 내 사는 곳에서는
제일 큰 병원인 의료원까지 가야 했다
오래된 부정맥과 당뇨 직전 단계란다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한 달분치 약을 처방받아 나왔다
드디어 장기 복약자가 된 것이다
시내버스에 빨리 오르지 못하거나
엘리베이터에서 슬로비디오인 분을 봐도

예전보다 겸손해진 내가 거기 있다
어지럼증이 사람을 한층 겸손하게 만든다
벌써 석 달째 접어드는 장기 복약
어지럼증은 사라졌지만 겸손은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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