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지식과 깨달음은 어떻게 다른가

신타나 2025. 11. 22. 01:57

지식과 깨달음은 어떻게 다른가


지식이란 외부에 있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앎을 말하는 반면, 깨달음이란 지식적인 앎이나 명상 수행 등을 통하여 근처까지 갈 수는 있으나, 결정적으로는 자기 스스로 깨달아 얻는 내면적인 앎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지식이란 외부에서 얻게 되는 앎이며 깨달음이란 내면에서 얻게 되는 앎입니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깨달음에 있어서 외부에서 얻는 지식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외부에 있는 말과 글은 깨달음의 근처까지만 안내할 뿐, 결정적인 깨달음은 자기 스스로 내면에서 얻게 되는 앎이기에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불교에서도 선종과 교종의 대립이 있는 시기도 있었습니다만, 한편으로 선과 교의 통합을 주장하는 운동(고려 시대 지눌과 보우 선사 등)도 있었습니다. 중국 당송 시대에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고 하여 교학이 필요 없고 오로지 참선만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선불교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만, 교학이 없는 참선은 눈먼 자가 혼자서 산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등산로 입구까지는 외부 지식인 교학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고, 결정적인 깨달음은 내면에서의 사유를 통해서 자기 스스로 깨달아야 깨달음의 정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엔 교학은 물론이고 스승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대명사인 석가모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자귀의 법귀의"라는 말씀을 유언처럼 남겼습니다. 타인이 아닌 자신한테 귀의하고 타인의 깨달음이 아닌 자신의 깨달음에 귀의하라는 뜻입니다.

이중 '법귀의'를 후세 사람들이 석가모니의 깨달음인 불법에 귀의하라는 말로 잘못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결코 석가모니의 깨달음인 불법이 아니라, 앞에 있는 자귀의처럼 자신의 깨달음에 귀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받아 적은 게 바로 불경이고 불법이며, 이를 공부하는 게 바로 교학인 것입니다.
그러나 역대 어느 선지식도 책이나 스승의 말을 통하여 깨우친 사람은 없습니다. 석가모니조차 도반들과 함께 스승을 떠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혼자 명상에 들었을 때 문득 깨우치지 않았나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의 불교 선사로 널리 알려진 경허 선사도, 마지막엔 석가모니의 말씀인 교학이 아니라 참선을 통해서 혼자 사유하다가 문득 깨우쳤습니다.

이처럼 석가모니를 비롯한 깨달음을 얻은 모든 사람이, 처음엔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서 또는 교학을 통해서 지식으로 깨닫고자 했으나 안 되는 일임을 깨닫고는, 마지막으로 스스로 사유를 통해서 (그 방법이 명상이 되었든 화두 참선이 되었든)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 반전이 또 하나 있습니다.
깨달음은 외부에서 얻는 지식에 의해서도 아니지만, 내면의 사유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외부에서의 지식을 통해서 깨닫고자 하는 추구심 다음에, 스스로 사유를 통해서 깨닫고자 하는 추구심조차 마지막엔 내려놓아야 합니다. 전체이자 절대인 신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겸허해지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경전과 같은 책이 필요하고 선각자의 가르침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는 내면에서의 사유가 필요하지만, 이 모든 건 궁극적으로 전체이자 절대인 신 앞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최종적으로는 나를 버려야 하는데 이게 바로 무아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무아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바로 외부에서의 지식이므로, 무아를 깨닫기 위해서는 또다시 내면에서의 사유를 거쳐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자기를 죽여 없애야 합니다. 이를 오늘날의 우리는 에고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에고든 뭐든 남이 아닌 나를 죽여 없애야 하는 거죠. 현상적이고 개인적인 내가 죽어 없어져야 전체이자 절대인 내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전체이자 절대인 나! 이게 바로 우리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참나입니다.

비유하자면 구름에 가린 태양이 바로 참나이며, 구름이란 다름 아닌 현상적이고 개인적인 나 즉 우리가 보통 '나'라고 말하고 생각하는 바로 그 존재입니다. 고로 참나인 태양이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구름에 가린 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상적이고 개인적인 나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 자리가 곧 참나입니다. 에고적인 나와 참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에고적인 나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 자리가 곧 참나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참나의 자리를 발견하려면 외부에서의 가르침에 의한 지식이 아니라 내면에서의 깨달음이 필요한데, 내면에 있는 나조차 내려놓아야 참나를 만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깨달음이란 참나를 만나는 과정인데 이는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많은 추구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죽여 없애야 (또는 모든 추구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만 이러한 최종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추구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는 점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 김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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