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개인은 없다

신타나 2025. 12. 10. 00:11

개인은 없다


영국의 영성가 토니 퍼슨스는 "개인은 없다."라고 말했으나, 이는 깨닫고 난 뒤의 일이지 깨닫기 전에는 개인이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생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이다. 깨닫기 전에는 개인인 중생에 불과하지만, 깨달은 다음에는 개인이 없는(즉 무아인) 붓다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깨달음이란 나라는 개인이 없다는, 즉 무아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됨을 말한다. 중생 또는 아트만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우리가 모두 붓다 또는 브라만임을 깨닫는 게 바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토니 퍼슨스 선생의 "개인은 없다."라는 말씀에 깊은 깨달음이 담겨있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이게 바로 2,500여 년 전 석가모니의 말씀인 무아에 대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대적인 해석이기에 더욱 그렇다. 무아의 뜻인 "내가 없다"라는 말보다는, (나라는) "개인이 없다"라는 표현이 훨씬 더 쉽게 다가오지 않는가? 그리고 또한 나라는 개인이 없는 것일 뿐, 나라는 전체가 없는 것은 아니므로 더욱 그렇다.

무아 즉 내가 없다고 할 때는 모든 '나'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무아라면 누가 깨닫는 것이냐는 의문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은 없다"라는 문장은 "개인이 아닌 전체는 있다"라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에 이런 의문이 사라진다. '개인으로서의 나'는 없지만, '전체로서의 나 또는 전체의 부분으로서의 나'는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전체이자 절대인 신의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자유의지를 가진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모두가 인드라망으로 연결된 분리되지 않은 하나인 것이다. 즉 우리가 바로 유일한 존재인 신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오직 신뿐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5.12.11
위대한 깨달음  (0) 2025.12.10
보이지 않는 거울  (0) 2025.11.28
지식과 깨달음은 어떻게 다른가  (0) 2025.11.22
체험되지 않는 나  (0) 2025.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