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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우리 몸을 비롯한 지상에 있는 대상이 환상인 게 아니라, 대상을 지각하는 몸과 마음을 나라고 착각하는 게 곧 환상이다. 오감에 의해 지각되는 몸이나, 몸을 통해 지각되는 마음을 나라고 믿는 우리의 관념이 곧 환상이요 허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감으로 지각되는 몸과, 몸과 함께하는 의식에 의해 지각되는 마음을 오랜 세월 동안 나 자신으로 생각해 왔다. 저녁 어스름에 집에 찾아온 손님을, 우리는 어쩌다 다른 사람으로 잘못 보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손님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지, 그 손님이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몸이나 마음을 우리 자신인 것으로 생각하는 게 환상이지, 우리 몸을 비롯한 지상에 있는 물리적 대상이 환상인 것은 아니다.그런데 붓다..

깨달음의 서 2024.10.21

부패와 발효 그리고 잔상

부패와 발효 그리고 잔상 / 김신타 어제 보았던 기억을 오늘 다시 꺼낸다면 그것은 점점 시들어 가는 냄새나는 열매가 될 것이다 어제의 기억은 땅속에 묻어놓고 눈을 들어 오늘 다시 바라볼 때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며 켜켜이 쌓여 숙성이 될 것이다 어제 본 것 어제 들은 것 굳이 다시 꺼내지 않아도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잔상을 떠올리지 말자 어제 보았거나 들었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잔상일 뿐이다 어제 아름다웠던 것도 아름답지 못했던 것도 오늘 다시 그림을 그리자 잔상을 곱씹을 게 아니라 새로운 종이 위에 새로운 기억으로 채색하자

신작 詩 2024.10.18

가을 소풍

가을 소풍 / 김신타 카페 옆 식물원에서 일행과 떨어져 혼자 구경하다가 차를 운전해야 하는 내가 안 보이자 다른 사람들은 지금 다 가는데 어디서 뭐 하고 있느냐며 조금은 짜증 섞인 전화가 왔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있음을 알아챘으나 지금 가고 있는 중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는 이내 일행을 만나 함께 돌아왔다 집에 와서 다른 일 하는데 아까의 일이 생각나면서 사람이 짜증 낼 수 있다는 게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게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혼자 피식하는 웃음이 났다 예전 같으면 현장에서 바로 뭘 그렇게 짜증 내느냐며 서운함을 참지 못했을 나인데 이제는 내 감정을 알아차렸을 뿐 아무런 흔들림 없이, 더 나아가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든다는 사실이 가을날 국화꽃처럼 향기롭다 눈에 보이지는 ..

신작 詩 2024.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