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우리 몸을 비롯한 현상계에 있는 대상이 환상인 게 아니라, 대상을 지각하는 몸과 마음을 나라고 착각하는 게 곧 환상이다. 오감에 의해 지각되는 몸이나, 몸을 통해 지각되는 마음을 나라고 믿는 우리의 관념이 곧 환상이요 허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감으로 지각되는 몸과, 몸과 함께하는 의식에 의해 지각되는 마음을 오랜 세월 동안 나 자신으로 생각해 왔다. 저녁 어스름에 집에 찾아온 손님을, 우리는 어쩌다 다른 사람으로 잘못 보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손님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지, 그 손님이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몸이나 마음을 우리 자신인 것으로 생각하는 게 환상이지, 우리 몸을 비롯한 현상계에 있는 물질적 대상이 환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붓다의 많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불교의 조사나 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각자가 위와 같은 착각을 해왔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다. 붓다는 무아 無我를 설파했지 무세상 無世上을 설파하지 않았다. '현상계에는 내가 없다'라는 뜻인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무아가 아니라, 오감으로 지각되는 이 세상이 '없다'라거나 또는 환상이라는 가르침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후대 누군가의 잘못된 가르침일 뿐이다. 우리 몸을 비롯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무상할 뿐이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인 것은 아니다.
"처음 깨달았을 때는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닌 것으로 보였으나, 다시 깨닫고 나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중국 송나라 시대 청원 선사가 쓴 책에 나온다는 구절이며, 우리나라 성철 스님에 의해 다시 한번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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